어린 시절부터 총 쏘는 것이 좋아 저금통을 깨서 장난감 총을 샀다. 몇번이고 총 모형을 조립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지인의 권유로 1993년 본격적으로 사격에 입문 했던 소년은 이제 한국 사격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주인공은 '사격의 신' 진종오(37·kt)다.
진종오가 새역사를 썼다. 진종오는 11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 올림픽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하며 1위에 올랐다. 본선을 1위로 통과한 진종오는 결선 초반 고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괜히 '세계 최강'이 아니었다. 6.6점의 실수를 딛고 대역전 드라마를 일궈내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7일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아쉽게 5위에 머문 진종오는 주종목에서 자신의 이름값을 하며 한국 선수단에 네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진종오는 4가지 대기록을 세웠다. 우선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전 3연패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2연패(전이경 황경선 이상화 김기훈)는 있었지만 3개 대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는 없었다. 진종오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차지했다. 또 사격이 올림픽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개인전 한 종목 3연패에 성공한 것도 진종오가 처음이다. 말그대로 전입미답의 고지에 올랐다.
또 진종오는 '양궁의 레전드' 김수녕이 갖고 있는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메달(6개·금4 은1 동1)과 타이를 이뤘다. 진종오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4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뿐만 아니다. 김수녕과 '쇼트트랙 여제' 전이경이 갖고 있는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 기록(4개)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범위를 아시아로 넓히면 왕이푸 이후 두번째로 아시아 사격 역사상 6개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진종오가 처음부터 빛난 것은 아니었다. 대학 입학때까지는 기대주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는 시련도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왼쪽 쇄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당했다. 하지만 진종오는 강했다. 병실 천장에 표적지를 붙여 놓고 훈련을 이어갔다. 3개월간의 부상 후 진종오는 한뼘 더 자랐다. 하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때 축구를 하다 넘어지며 오른쪽 쇄골이 골절됐다. 오른손으로 총을 쏘는 그에게 그야말로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부상 정도가 심해 오른쪽 어깨에 금속 핀까지 박았다. 진종오는 불굴의 의지로 3~4개월만에 복귀에 성공했다. 부상은 전화위복이 됐다. 강한 집중력에 격발 시간까지 단축되며 약점없는 선수로 발전했다.
불굴의 오뚝이 정신으로 무장한 진종오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2004 아테네올림픽 이후로 줄곧 세계 정상급 사수의 자리를 지켜왔다. 자신만의 '빨간색' 시그니처 총기 모델이 있을 정도로 진종오는 최고로 인정을 받는다. 그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도 최고를 향한 의지를 이어나갔다. 그 어느때보다 힘겨웠던 선발전도, 달라진 올림픽 결선 방식도 그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진종오는 멈출 생각이 없다. 그는 "내 이름으로 총 라인을 출시하는 게 목표였는데 이번에 이뤘다. 그 다음은 책을 썼으면 좋겠다. 글재주가 없으니 누군가 소개 받으면 좋겠다. 사격 전문 서적을 발간해 내 이야기를 담고 싶다. 내가 일지를 꾸준히 쓰는 이유다. 내가 한 것들을 후배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 다음은 지도자의 길을 가는 건데 그 단계는 아직 멀었다. 이걸 다 해내고 싶다. 그래서 경기를 더 뛰고 싶다"고 했다.
진종오는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준비로 이번 올림픽에 나섰다. 리우행을 앞두고 기존에 신던 빨간색 역도화로 바꿨고, 본선을 3일 앞두고 훈련시간대도 미세하게 조절했다. "종오는 무엇을 해도 믿을 수 있다"는 코치의 말은 진종오의 현주소다. 이번 금메달로 진종오는 그가 원하는 목표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됐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