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넘버 원'은 반칙이나 배신이 없는 한 웬만해서 바뀌지 않는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다르다. 정정당당하게 겨뤘는데도 세계 1위가 자주 덜미를 잡힌다.
리우올림픽에서도 세계 1위의 눈물이 속출하고 있다. 랭킹도 숫자에 불과한 걸까.
아직 초반이지만 세계 1위의 눈물은 한국에 유독 많은 편이다. 유도의 남자 60kg급 김원진, 66㎏급 안바울, 73㎏급 안창림은 체급별 세계랭킹 1위지만 모두 금메달을 놓쳤다.
안바울은 은메달로 아쉬움을 달랬고, 김원진과 안창림은 패자부활전, 16강전에서 각각 탈락했다.
남자 양궁 개인 예선 순위 결정전부터 세계신기록(700점)의 기염을 토했던 김우진은 단체전 금메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개인전 32강에서 충격패를 당했다.
사격 진종오도 10m 공기권총 세계기록(206.0점·2015년 4월 12일)을 보유한 최강자였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5위에 머물렀다.
세계 1위의 눈물은 다른 출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우올림픽 최대 이변으로 꼽히는 조코비치(세르비아)의 탈락이 대표적이다. 남자 테니스 세계 1위 조코비치는 남자단식 1라운드에서 세계 141위밖에 불과한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에게 패했다.
여자 유도에서도 48㎏급 랭킹 1위인 문크흐바트 우란체체그(몽골), 57㎏급 도르즈수렌 수미야(몽골)가 잇달아 금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펜싱 남자 플뢰레 세계 1위 오타 유키(일본)는 32강에서 고배를 마셨고, 여자 10m 공기권총 세계기록 보유자 이쓰링(중국)은 동메달에 그쳤다.
세계 1위는 아니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인 비너스 윌리엄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미국·테니스)는 여자복식 1회전 탈락으로, 축구의 브라질은 조별리그 무승(2무)으로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세계 1위여서 '이변'이 부각됐을 뿐이지 세계 1위의 명성을 이어간 이들도 즐비하다.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 맥 호튼(호주), 여자 자유형 400m 케이티 레데키(미국), 여자 유도 52kg급 마일린다 켈멘디(코소보) 등은 랭킹에 걸맞게 금메달을 획득했다.
세계 1위가 무너지는 이유는 제 각각이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선수 개인의 컨디션, 대진운 등 외적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대체적인 의견은 선수의 심리와 준비에서 미흡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안창림의 16강전 패배를 중계한 김병주 유도 해설위원(KBS)은 "상대 선수는 안창림의 약점 등에 대해 많은 분석과 대비를 하고 나온 것 같다. 반면 안창림은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배드민턴 남자복식 세계 1위 유연성-이용대를 이끌고 있는 이득춘 배드민턴대표팀 감독은 "세계 1위는 그 이유만으로 '공공의 적'이다. 모든 상대가 유연성-이용대의 전력을 이 잡듯 분석하고 장·단점을 꿰뚫고 있다"면서 "세계 1위의 모든 것이 노출돼 있는 반면 세계 1위는 강력한 라이벌 정도를 대비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항상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조언했다.
상대와 대결하는 종목과 달리 자신과의 싸움으로 승부하는 기록종목의 경우 심리적 압박감이 더 크다. 우선 기록 경쟁에서 어떤 상대가 치고 올라오는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이 있다. 여기에 자신의 1위 기록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중된다.
단체전 우승의 여운을 빨리 떨치지 못한 김우진은 "내가 부족했다"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했음을 인정했고, 박태환은 "실전 훈련이 좀 부족했지만 힘겹게 출전한 올림픽이라 더 잘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