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LG의 경기에서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0-1로 뒤진 두산의 3회말 공격. 선두 김재호가 중전안타를 치고 나간 뒤 박세혁의 땅볼 때 2루까지 진루했다. 이어 류지혁이 2루수 왼쪽으로 깊은 내야안타를 쳤다. 공을 잡은 LG 2루수 손주인은 타자주자의 세이프를 확인한 뒤 공을 3루로 던졌다. 2루주자 김재호가 3루를 밟고 홈으로 대시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김재호는 3루선상에서 협살에 걸렸다.
그런데 LG 3루수 히메네스가 포수 박재욱에게 공을 던지지 않고 홈을 향해 달려가는 김재호를 태그하기 전력질주를 하다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몸을 날렸다. 히메네스는 공이 담긴 글러브를 뻗어 김재호의 다리를 태그했다. 그러나 배병두 구심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LG 벤치에서 합의판정을 요청했다. 리플레이 화면상 김재호의 발이 홈플레이트에 닿기 전 히메네스의 글러브가 다리에 먼저 닿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LG측의 요청에 따라 세이프가 아웃 판정으로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심판실로 가서 TV 리플레이를 보며 합의판정을 진행한 나광남 1루심은 그대로 세이프를 선언했다. 왜 그랬을까. 나 심판원으로부터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태선 기록위원은 "태그에 따른 아웃-세이프 합의판정은 아웃이지만, 홈충돌 방지규정에 따라 세이프를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LG 포수 박재욱이 김재호의 주루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LG는 홈충돌 방지규정에 대한 합의판정을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태그 아웃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정을 요청했을 뿐이다. 즉 심판진이 'LG 포수 박재욱이 홈충돌 방지규정을 어기고 김재호의 주루를 방해했다'고 판정했다면 이는 '김재호가 아웃판정을 받고 LG가 아니라 두산측에서 합의판정을 요청했을 경우'를 전제로 해야 정상적이다. 두산은 물론, LG에서도 요청하지도 않은 맞는 상황을 놓고 합의판정에 들어간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KBO 정금조 운영부장은 "규정상 합의판정 사항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올시즌 개막 이전 감독자 회의에서 심판위원장이 홈플레이트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한 합의 판정을 요청받을 경우 아웃-세이프와 홈충돌 방지규정, 두 가지를 모두 판정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합의판정 규정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각 구단 감독들의 동의를 구했다는 이야기다.
이날 대기심인 박종철 심판원도 "감독들도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또 LG측에서 단순히 아웃-세이프에 대한 요청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두 가지 상황을 포괄적으로 봤다"고 했다. 이 합의판정이 종료된 뒤 LG 양상문 감독이 어필에 나서자 심판진은 "포수가 홈충돌 방지규정을 어겼는지에 대한 판정도 함께 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은 결국 LG 선발 허프였다. 허프는 이어 허경민을 사구로 내보내더니 정수빈의 타구를 잡은 뒤에는 1루와 2루, 홈 어디로도 송구를 하지 않는 실책을 범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허프는 계속해서 민병헌, 김재환, 에반스에 연속안타를 얻어맞았고, 2사후에도 김재호에게 2루타, 박세혁에게 우전적시타를 허용한 뒤 1-8로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한편, 실책 2개가 겹쳐 허프가 2⅔이닝 동안 내준 8점은 모두 비자책으로 기록됐다. 한 이닝 최다 비자책점 기록은 9점으로 두 차례 있었다. 한화 이글스 유창식이 2011년 10월 4일 부산 롯데전 6회말, KIA 타이거즈 홍건희가 2015년 7월 9일 목동 넥센 2회말에 비자책 실점 9점을 기록한 바 있다. 잠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