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말이었다.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훈련 장소인 잠실구장에 12명의 선수가 모여들었다. 넥센 히어로즈 김택형과 김하성, 고종욱, SK 와이번스 박종훈, KIA 타이거즈 심동섭과 홍건희, 한화 이글스 하주석, 롯데 자이언츠 오승택, LG 트윈스 문선재와 양석환, 경찰야구단 김사훈과 김도현이었다.
'진짜' 국가대표는 아니었다. 똑같이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대표팀 상비군, 또는 훈련 파트너로 불렸다. 이는 지난해 한국시리즈가 10월31일 끝난 탓이다.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합류가 지연됐다. 또 일부 선수가 잔부상을 호소했다. 그렇게 12명의 상비군이 시즌 종료 후 쉬지도 못한 채 야구장으로 출근했다. 훈련 파트너 임무는 쿠바와의 평가전을 치르고서야 끝났다.
그렇다고 휴가를 반납한 이들이 마냥 불만을 가진 건 아니다. 오히려 적잖은 자극을 받아 욕심이 생겼다는 게 공통된 말이다. 염경엽 넥센 감독도 "대표팀에 뽑히는 것은 엄청난 가치가 있다. 구단에 상비군 차출 문의가 왔을 때 '뽑아달라'는 얘기를 강력하게 했다"면서 "상비군에 뽑힌 선수들은 돈 주고도 살수 없는 큰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형들이 왜 야구를 잘 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선수는 상비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고종욱, 홍건희, 하주석이 대표적이다. 고종욱은 25일까지 86경기에 출전해 336타수 116안타 타율 3할4푼5리에 8홈런 52타점 66득점을 기록 중이다. 최다 안타 부문 공동 3위, 타율 5위, 득점 6위다. 그는 캠프 때만해도 지명타자 후보로 거론됐지만, 수비력도 점차 안정돼 외야 한 자리를 꿰찼다. 구단 내부적으로는 제2의 손아섭(롯데)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홍건희는 이 달부터 선발로 전환해 기대 이상의 피칭을 하고 있다. 불펜 투수로 33경기에서 1승2패 5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3.43. 선발로는 3경기에서 2승무패 평균자책점이 3.31이다. 무엇보다 선발로 맞대결한 상대가 넥센, 두산, NC다. 넥센전에서 4이닝 2실점, 두산전 6이닝 1실점, NC의 강타선도 6⅓이닝 3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하주석은 현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 없다. 몸 상태를 보고 조만간 콜업할 것이라는 게 김성근 한화 감독의 말이다. 그는 부상 당하기 전 주전 유격수로 평균 이상의 플레이를 선보였다. 59경기에서 195타수 55안타 타율 2할8푼2리에 6홈런 28타점이다. 실책이 10개이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안정됐다. 고교시절부터 지적받은 불안한 송구력 역시 나아졌다는 평이다.
홍건희는 일전에 상비군 경험에 대해 "기술적으로 특별히 도움 받은 건 없다"고 했다. "형들과 대화할 시간도 부족하고, 조용히 훈련을 도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욕심이 생기더라. 함께 훈련을 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국가대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런 욕심이 생기면서 올해 구위가 좋아졌다는 얘기도 듣는 것 같다. 영광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