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낯 뜨거운 책임회피'다.
사상 초유의 사태이자 해외 언론에도 집중조명되며 한국 여자농구의 위상을 뭉개버린 '첼시 리 문서위조 사건'에 대한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대응과 자세가 딱 그 모양이다. 이번 사건이 벌어지게 만든 주체 중 하나인데도 신선우 총재의 "죄송하게 생각한다. 사과드린다"는 말 이외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관련자 혹은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자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WKBL은 5일 서울 등촌동 WKBL사옥에서 이사회를 열어 '첼시 리 문서위조 사건'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첼시 리와 에이전트의 영구 제명 및 무기한 활동정지는 당연하다. 또 KEB 하나외환이 준우승을 포함한 2015~2016 시즌 기록의 전면 무효화와 시상금(플레이오프 1500만원, 정규리그 2위 3000만원) 반환, 장승철 구단주 박종천 감독의 사임, 신인 및 외국인 드래프트 후순위(6, 12위) 지정 등의 강력한 징계도 충분히 납득할 만 수준이다.
그런데 WKBL은 문제가 된 '해외동포선수 규정'만 철폐했을 뿐 내부적으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신선우 총재는 "(연맹의 잘못에 관한)구체적인 정황 부분이 없어 이사회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까지 말했다. 사실상 WKBL이 이번 사건에 관해 책임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첼시 리 문서위조 사건'은 사상 초유의 사태다. 악의적인 사기로 인해 지난 2015~2016시즌 여자 프로농구 시즌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대부분 선수들의 땀과 열정이 첼시 리의 어처구니없는 사기로 인해 평가절하된 셈이다. 때문에 문서를 조작해 '해외동포선수'로 한국에 온 첼시 리와 그의 에이전트, 그리고 이런 선수를 영입한 KEB 하나외환이 강력한 징계를 받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선수의 신분에 관한 의혹을 명확히 검증하지 못하고 승인해 준 WKBL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무엇보다 첼시 리의 신분이 불분명하다는 의혹이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WKBL은 그럴 때마다 "문제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의도적인 거짓말은 아니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거짓이었고, 그로 인해 조직의 도덕적 해이와 무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신 총재의 말처럼 문서 조작 사실을 미리 검증하거나 방지하지 못했다는 "구체적 정확"이 없을지라도 한 나라의 여자 프로농구 전반을 아우르는 최고 조직이라면 그에 합당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마땅하다. 그럼에도 신 총재는 모호한 말로 '사과'만 하고 있다.
신 총재는 이번 사안에 대해 이런 말로 마무리 했다. "있어서는 안될, 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이런 게 재발 안되는 차원으로, 말로 어떻게 이것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실망시키고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린다." 문장 자체도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여자농구를 이끄는 WKBL 총재의 발언으로서는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다.
등촌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