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가 '축구판' 브렉시트 속에 좌절했다.
FIFA랭킹 11위 잉글랜드는 28일(이하 한국시각) 프랑스 니스의 알리안츠 리비에라에서 열린 아이슬란드(34위)와의 유로2016 16강전에서 1대2로 패하며 8강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대회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히던 잉글랜드는 '복병' 아이슬란드에 덜미를 잡히며 일찌감치 유럽인들의 축제에서 '분리'되고 말았다. 경기 후 로이 호지슨 잉글랜드 감독이 사퇴의사를 표하는 등 잉글랜드의 탈락은 영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잉글랜드는 경기 초반에만 잠깐 웃을 수 있었다. 전반 4분 스털링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루니가 침착하게 차 넣으며 기분좋게 앞서갔다. 하지만 기쁨은 찰라였다. 불과 2분 후인 전반 6분, 아이슬란드의 시구르드손이 아르나손의 헤딩 패스를 발리 슈팅으로 연결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다급해진 잉글랜드는 파상 공세를 펼치기 위해 라인을 올렸지만 오히려 전반 18분 시그도르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좌절해야 했다.
잉글랜드의 충격적 탈락. 최근 영국을 뒤흔든 브렉시트와 닮은꼴이다. 브렉시트를 촉발한 핵심 요구 중 하나는 이민 억제 정책. 공교롭게 이번 유로 2016에 출전한 잉글랜드 대표팀 23명은 순혈주의로 구성됐다. 이민자 출신은 단 한명도 없다. 또한 전원이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이민자 출신 핵심 선수를 보유한 독일이나 이탈리아와는 대비되는 모습. 이는 '프리미어리그의 자존심'을 앞세운 영국의 옹고집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결과는 초라했다. '축구 종가'라는 자존심에 매달리는 사이 '축구 강국' 이미지는 서서히 퇴색되고 있다. 이번 유로2016에서의 좌절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실제 잉글랜드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1966년 우승 이후 인상적인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심지어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1무2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자진사퇴를 선언한 로이 호지슨 감독의 지도력도 도마에 올랐다. 2012년부터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어온 호지슨 감독은 고집스러울 정도의 뚝심으로 유명하다. 조별리그 1차전 러시아전에서 1대1로 비긴 이후 비판받았지만 웨일스와 2차전에서도 베스트 11을 바꾸지 않았다. 부진했던 해리 케인을 주전으로 기용하며 제이미 바디보다 더 많은 기회를 주기도 했다. 호지슨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2년 더 대표팀을 맡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우리가 가진 능력에 맞는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지도자가 잉글랜드의 발전을 이끌어야 할 시기"라고 밝히며 사퇴를 선언했다. 호지슨 감독에 이어 게리 네빌 코치와 레이 르윙턴 코치도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순혈주의'와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잉글랜드 축구는 유럽의 강호 대열에서 서서히 멀어지며 또 다른 브렉시트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유로2016 8강 대진(한국시각)
폴란드-포르투갈(7월 1일 오전 4시·프랑스 마르세유)
웨일스-벨기에(7월 2일 오전 4시·프랑스 릴)
독일-이탈리아(7월 3일 오전 4시·프랑스 보르도)
프랑스-아이슬란드(7월 4일 오전 4시·프랑스 생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