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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독특한 스타일을 통해 되살아난 불행한 천재 예술가의 삶,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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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독특한 스타일을 통해 되살아난 불행한 천재 예술가의 삶,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BBCH홀)

가장 기다려온 뮤지컬 한 편이 서울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 중인 '에드거 앨런 포'다.

근대 추리문학의 창시자이자 발라드 시 '애너벨 리'로 유명한 E. A.포(1809~1849)는 시대를 앞선 천재였지만 생활은 늘 궁핍했다. 그로테스크하고, 어딘가 음울함이 묻어있는 그의 작품들은 살아생전 큰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삶과 작품은 보들레르나 말라르메 같은 프랑스 상징주의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시간이 흐르면서 19세기 미국문학의 거두로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몇 차례 공연된 뮤지컬 '갬블러'의 작곡가 에릭 울프슨의 유작이다. 2009년 독일에서 초연됐다. 1980년대를 풍미한 프로그레시브 락밴드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멤버였던 울프슨은 1990년대 이후 뮤지컬에 전념하면서 철학적인 깊이를 담은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도박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포착한 '갬블러'를 비롯해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를 소재로 한 '프로이디아나', 그리고 이 '에드거 앨런 포'가 그 맥락에 있다.

뮤지컬은 포의 라이벌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를 파멸시키려는 작가이자 목사인 루퍼스 그린스월드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개된다. 불행한 예술가의 삶을 시간순으로 추적하면서 그의 짧은 성공과 좌절, 그리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보여준다. 포와 그의 재능을 두려워한 무자비한 기성 권력 그린스월드의 관계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연상시킨다. 또 무대 중앙에 마련된 거대한 새의 날개는 이 땅에서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었던, 포의 열망을 표현하는 듯 하다.

하지만 짧았던 포의 삶이 해피엔딩이 아니었기에 이 뮤지컬 또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스토리 중심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다. 포의 대표시 중 하나인 '갈가마귀(The raven)'에서는 유명한 표현 '네버모어(nevermore)'를 영어 그대로 썼는데 그게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는지 의문이다. 이 뮤지컬은 대신 음악과 세트, 영상에 개성과 스타일을 담는 전략을 택했다. 사실, 비극적인 천재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선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양한 장르를 동원한 울프슨의 음악은 이미 대중들의 귀에 친숙한 콘셉트앨범을 토대로 한 '갬블러'보다는 못했지만 합격점을 줄만하다. 아쉬운 점은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스타일을 중시한 작품일 수록 배우들의 에너지가 중요한데, 주조연간 앙상블이 균형을 이루지 못해 극에 몰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최근 뮤지컬계는 작품 중심이 아니라 배우 중심의 작품 선택 경향이 더 심화되고 있다. 뮤지컬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개성과 스타일이 살아있는 '에드거 앨런 포' 같은 작품이 확 눈에 띄는 이유다. 7월 24일까지. 마이클리, 김동완, 최재림, 최수형, 정상윤, 윤형렬, 정명은, 김지우, 오진영, 장은아 등 출연.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