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임정우, 이리 좀 와봐. 와보라니까 인마."
꽤 큰 목소리로 호통치듯 불렀지만, 사실 얼굴에는 푸근한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지난 12일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3루쪽 원정 덕아웃에 앉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던 LG 트윈스 양상문 감독은 눈앞으로 지나가는 한 선수를 목청껏 불렀다. 바로 전날 한화전에서 연장 끝내기안타를 허용하고 패전투수가 된 임정우였다.
"야야, 괜찮아. 어제 너 말고도 마무리 투수들 죄다 블론 세이브 했더라."
양 감독의 목소리는 임정우가 가까이 다가오자 더욱 커졌다. 그리고는 임정우가 피하고 싶었을 것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전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LG는 10일 대전 한화전에서 9회초 마지막 공격 때 상대 마무리 투수 정우람을 공략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장 10회말에 임정우가 정근우에게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으며 1대2로 졌다.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지만, 임정우는 이 경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연장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원정팀은 끝내기 안타를 맞을 위험을 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마운드에 오르는 건 매우 큰 배짱을 필요로하는 일이다. 양 감독은 임정우라면 그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늘 예상대로 결과가 전개되는 건 아니었다. 믿었던 임정우가 무너졌다.
"원래 마무리 투수라는 게 그런거야. 잘하고 있으니까 신경쓰지마."
하지만 이걸 꼭 임정우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상대 타자인 정근우가 워낙 잘 치기도 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타구 방향이 약간만 왼쪽으로 갔어도 유격수 오지환에게 쉽게 잡힐 수 있었다. 여러모로 임정우는 불행했다. 양 감독은 그래서 더욱 임정우를 위로하고 싶었던 듯 했다. 그는 임정우에게 "블론 세이브 한 개도 안하는 마무리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또 하필 어제(10일)는 마무리들이 전부 얻어터졌더라. (정)우람이도 그렇고, 김세현(넥센) 박희수(SK)까지 다 나와서 얻어맞았더라. 원래 또 그런 날이 있어. 어제는 마무리들이 다 안되는 날이었던게지"라며 전날의 상황에 매몰되지 말라고 주문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임정우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큰 짐을 덜은 듯 "더 잘할 겁니다"라고 말한 채 되돌아섰다.
그리고 실제로 임정우는 곧바로 팀의 승리를 지켜줬다. 이 대화가 벌어지고 몇 시간 뒤. LG는 1-3으로 뒤지던 경기를 5-3으로 뒤집었다. 그리고 9회말 마지막 수비 때 임정우가 다시 나왔다. 임정우는 첫 타자인 이용규에게 우전안타를 맞았지만, 이후 대타 이종환-김태균-로사리오의 강타선을 모두 범타처리해 승리를 지켜줬다. 확실히 감독의 격려로 힘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