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처럼, 야구 고유의 특성을 보여주는 격언이 또 있을까. 특히 선발 투수는 팀 전력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선발투수가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할 수도 있지만, 버텨주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시즌을 준비하면서 코칭스태프가 숙제를 쌓아놓은 것처럼 고민하는 게 선발진 구성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는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샀다. 에이스 양현종을 비롯해 윤석민, 헥터 노에시, 지크 스프루일, 임준혁으로 이어지는 5인 선발체제로 시즌을 시작했다. KBO리그 10개 팀 중 최고 수준의 선발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윤석민 임준혁이 부상으로 시즌 초반 전력에서 빠지면 이런 기대는 일찌감치 무너졌다. 대체 선발 투수들이 빈자리에 들어갔지만,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마운드 부진이 깊어지면서 5할 승률도 멀어지고 있다.
어차피 시즌 내내 선발 5명이 확실하게 돌아가는 팀은 드물다. 1~3선발이 착실하게 임무를 수행해줘도 중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KIA는 이마저도 어렵다. 선발투수들의 경기력이 들쭉날쭉하기도 하고, 선발투수 호투에도 타선의 집중력 부족, 불펜 난조 등 여러가지 요인이 겹쳐 발목을 잡는다.
먼저 1~3선발투수의 성적을 살펴보자. 8일 현재 양현종이 1승6패-평균자책점 3.79. 헥터가 6승2패-3.18, 지크가 5승7패-4.28를 기록하고 있다. 1~3선발이 거둔 승수가 12승(1무15패).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메이저리그 출신 연봉 170만달러 외국인 투수 등 이름값에 비해 떨어지는 성적이다. 양현종은 지난 5월 13일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시즌 첫승을 거둔 후 4경기에서 2패만 안았다. 투구 내용이 안 좋은 경기도 있었고, 타선 도움을 받지 못한 게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게 1~3선발투수 등판 경기의 팀 성적이다. 전체 전력이 떨어지면 중심 투수가 등판하는 경기는 잡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팀 승률보다 떨어진다.
양현종이 나선 12경기에서 1승1무10패, 헥터가 등판한 12경기에서 8승4패, 지크가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12경기에서 5승7패를 기록했다. 이들 세 투수가 선발 등판한 36경기에서 14승1무21패. 승률이 4할에 불과하다.
8일 한화전이 많은 걸 시사한다. 선발 지크가 5⅔이닝 무실점 호투를 했는데도, KIA는 3-0으로 앞선 8회말 5점을 내주고 3대5 역전패를 당했다. 1~3선발투수의 역투가 무색하게 리드를 지키지 못하는 경기가 이어진다. 1~3선발투수가 등판했을 때 승수를 조금 더 쌓았다면, 지금보다 수월하게 레이스를 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8일 현재 22승1무30패, 승률 4할2푼3리. 오랫동안 8위에 멈춰있었는데, 올라가지 못하고 9위로 내려앉았다. 이제 바닥이다.
양현종이 나선 경기의 부진이 눈에 띈다.
1선발이다보니 상대팀 주축투수와 맞붙을 때가 많았다. 12번의 선발 등판 경기 중 외국인 투수를 상대한 게 8경기나 된다. 에릭 헤커(NC)를 비롯해 슈가 레이 마리몬(kt), 메릴 켈리(SK), 앨런 웹스터(삼성), 저스틴 니퍼트(두산), 알렉스 마에스트리, 에스밀 로저스(이상 한화) 등 상대 에이스, 구위가 좋았을 때 외국인 투수를 만났다. 이 때문에 타선이 침묵해 잘 던지고도 놓친 경기가 많았다. 지난해보다 팀 타격 기록이 좋아졌다고 해도 응집력은 별개의 문제다.
에이스, 1~3선발투수 등판 때 이기지 못하면 '다음'을 얘기하기 어렵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