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체코와의 유럽 원정 A매치 2연전에 나선 슈틸리케호에 이정협(25·울산 현대)의 이름은 없었다.
2015년 호주아시안컵 시절부터 줄곧 슈틸리케호 원톱 자리를 지키며 '군데렐라' 열풍을 일으켰던 이정협의 부재는 낮설기만 하다. 하지만 엄연한 현주소다. 올 시즌 울산 유니폼을 입고 김신욱의 대안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이정협은 골 가뭄에 시달렸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지난 3월 개막전부터 이정협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해왔다. 결론은 '불합격'이었다.
이정협이 미소를 되찾았다. 이정협은 28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와의 2016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12라운드에서 1-1 동점이던 후반 6분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달 9일 광주전 이후 49일 만에 터진 시즌 2호골.
역습 상황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볼을 몰고 가던 김승준이 제주 진영 페널티에어리어 오른쪽에서 낮고 빠르게 올려준 크로스를 문전 왼쪽에서 지체없이 왼발을 갖다대면서 마무리 했다. 득점을 확인한 이정협은 두 손을 펼쳐 보인 뒤 허공을 향한 어퍼컷 세리머니로 그간의 마음 고생을 털어냈다.
사실 이정협의 부활은 앞선 수원전에서도 감지됐다. 이정협은 수원전에서 코바의 두 번째 골을 돕는 패스로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다. 상대 수비수 두 명을 앞에 둔 상황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연계 플레이를 택하면서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그간 이정협은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다. 훈련장에선 누구보다 굵은 땀방울을 흘렸음에도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팀 부진까지 겹치면서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윤정환 울산 감독은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며 변치 않는 신뢰를 드러냈다. 하지만 무득점 속에 상처 입은 이정협의 자존심을 치유할 골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전에서 터진 득점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윤 감독은 "지금 이정협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90분을 뛸 수 있는 몸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금은 정상 컨디션의 70%밖에 안된다. 본인이 부족한 부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채워나간다면 슈틸리케 감독이 다시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의 이정협에겐 '울산' 뿐이다. "4월 이후 골이 없어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내가 대표팀에 가서도 안된다." 경쟁자들을 바라보는 눈빛도 한결 여유로워 졌다. 이정협은 "(황)의조는 어제(인천전) 골이 없었지만 나보다 더 많은 득점(4골)을 기록했고 평소 경기력도 좋았다. 당연히 대표팀에 들어야 한다. 나는 마음 편하게 소속팀 경기를 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대표팀보다 소속팀에 집중해야 할 때다. 어떻게 해야 울산에서 계속 상승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만 생각 중"이라며 "A매치 휴식기 동안 컨디션을 가다듬고 득점력을 높일 것이다. 대표팀은 그 이후에 생각할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더 이상 황태자가 아니다.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기 위한 이정협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