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이탈리아 밀라노)=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결전 24시간전. 이탈리아 밀라노 산시로는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렘과 욕심 그리고 비장 여기에 여유까지. 인간 사회에 있는 모든 감정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빅이어를 놓고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한 판 승부를 펼칠 산시로를 결전 24시간 전에 찾아갔다.
▶설렘
이곳저곳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밀라노 5호선 종착역인 산시로 스타디오역에서 나오자마자였다. 핸드폰 카메라의 촬영음이 곳곳에서 넘쳐났다. 피사체는 하나. 산시로였다. 레알과 아틀레티코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산시로를 바라보며 응원가를 부르고 함성을 질렀다. 경기 전 결전의 장소에서 자신의 힘을 조금이라도 미리 보태놓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양 팀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일반 관광객이나 다른 팀의 팬들도 산시로를 찾았다. 얼굴에는 벅찬 환희가 느껴졌다. AC밀란과 인터밀란의 수많은 전설들을 써내려간 그곳. 그리고 24시간 뒤 새로운 유럽 챔피언이 탄생할 곳이라는 설렘이 얼굴 표정에 다 보였다.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이곳은 산시로였다.
▶욕심
욕심의 장이었다. 가장 먼저 만난 욕심은 '암표상'들이었다. 산시로로 가까이 접근하자 '티켓, 티켓'을 외치며 따라붙었다. 필요없다고 하는대도 '칩(cheap)' 혹은 '프리미엄 시트'라며 왔다.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자 새로운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이날 암표의 가격은 상당히 셌다. 곳곳에서 1000유로를 불렀다. 카테고리 1의 액면가는 440유로. 암표상들은 2배정도밖에 안한다며 살 것을 종용했다.
암표상을 지났다. 산시로로 입성하기 전 광장에는 또 다른 욕심의 장이 펼쳐졌다. 산시로를 배경으로 한 야외 스튜디오들이었다. 전세계 주요 매체들이 산시로 앞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생중계를 준비했다. 간판 앵커들과 해설자들이 나와 이것저것 떠들어댔다. 곳곳이 조명을 배치했다. 스튜디오의 디자인도 화려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그리고 오래 시청자의 눈을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전세계에서 1억5000만명의 시청자들이 이 경기를 지켜보게 된다. 엄청난 금액의 광고비를 차지하기 위한 미디어들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 옆에는 UCL 스폰서들의 부스가 나왔다. 가스, 자동차, 맥주, 음료, 전자제품, 금융, 용품사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홍보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도 천문학적인 금액을 내고 이 권리를 보장받았다. 이익 창출을 위한 욕심의 장이었다.
산시로 안에서는 레알과 아틀레티코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승을 하는 팀은 1000억원대의 수입을 올린다. 우선 우승 상금이 약 200억원이다. 준우승팀보다 60억원이 많다. 여기에 각종 출전수당과 조별리그 및 토너먼트의 출전 수당 등이 붙는다. 레알이 우승하면 710억원, 아틀레티코가 우승하면 690억원을 벌 수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기 위해 양 팀의 관계자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비장
비장함도 풍겼다. 아틀레티코였다. 경기전 공식 기자회견이 시작이었다. 역사를 이야기했다. 수장인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구단의 113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을 하려 한다"고 했다. 1903년 창단한 아틀레티코는 UCL우승컵을 들어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 1973~1974시즌 유러피언컵, 2013~2014시즌 UCL 준우승이 최고다.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회, 유로파리그 2회 우승했다. UCL 우승이 마지막 퍼즐이다. 2년전 리스본에서 레알에게 우승을 내줬다. 설욕을 외쳤다. 시메오네 감독은 "팀의 근간과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며 "2년전보다 발전했다. 승리하겠다"고 했다.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페르난도 토레스도 비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토레스는 아틀레티코의 유스 출신이다. 항상 아틀레티코의 UCL우승을 바랐다. 그는 "아틀레티코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싶다. 2년전 구단은 준우승을 했다. 이제 한 발 더 나아가겠다"고 했다.
공식 훈련도 차분했다. 아틀레티코 선수들은 좀처럼 웃지 않았다. 조용히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해냈다. 훈련 내용도 패스와 역습 훈련 위주였다. 훈련 종료 직전 선수들은 슈팅 훈련을 했다. 그것도 스프린트 후에 좌우에서 날아오는 크로스를 골로 연결하는 장면이었다. 골을 넣겠다는 다짐을 엿볼 수 있었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유
반면 레알은 여유가 넘쳤다. 지네딘 지단 레알 감독의 기자회견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질문을 하는 취재진들 대부분 '올라(스페인어 안녕)'를 외치며 시작했다. 지단 감독도 '올라'로 답했다. 시메오네 감독과의 기자회견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말한 지단 감독은 시종 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프랑스 국적인 지단 감독은 답변 중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를 섞어서 말하는 여유도 선보였다. 해프닝도 있었다. 이탈리아 기자 한 명이 '마테라치'의 응원 메시지를 전했을 때였다. 일순간 기자회견장 내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테라치와 지단 감독은 악연이었다. 10년 전인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에서 이탈리아 수비수 마테라치는 프랑스 소속의 지단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 지단은 경기 종료 직전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받았다. 지단은 퇴장했고 이탈리아는 우승을 차지했다. 지단 감독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 마테라치가 마르코를 말하는 것이냐"며 되묻기까지 했다. 지단 감독은 마테라치에 대한 답변은 '굿'정도로만 하며 황당 질문을 넘겼다.
이어진 레알의 훈련은 여유 그 자체였다. 선수들 모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훈련에 임했다. 10대10 미니 게임에서도 선수들은 무리하지 않았다. 서로 개인기를 부리며 장난도 쳤다. 슈팅 훈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넣었을 때는 다들 박수와 환호로 격려했다. 실패해도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어넘겼다. 훈련이 끝나고 들어갈 때는 레알 관계자들이 팀스폰서를 데리고 와 기념촬영을 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치열
양 팀 기자회견과 훈련이 끝나자 또 다른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미디어들의 경쟁이었다. 전세계에서 온 취재진들은 노트북을 켜고 기사를 송고하기 바빴다. 다들 다양한 주제로 스토리를 써내려갔다. 관심의 초점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호날두는 24일 레알 마드리드의 훈련 도중 절뚝이면서 훈련장을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들 UCL결승을 앞두고 호날두의 몸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단 감독은 "더 이상 호날두가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몸상태는 완벽하다. 100%의 몸과 정신으로 내일 경기를 나설 것"이라고 했다. 팀훈련에서도 호날두는 즐거운 표정으로 땀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는 미디어들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호날두의 땀을 송고하느라 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