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m50의 50세 노장, '경마대통령' 박태종 기수가 데뷔 30년 만에 개인통산 2000승을 달성하며 한국경마의 전설을 만들었다. 지난 21일 토요일, 박태종 기수가 결승선을 가르는 순간, 경마팬들의 뜨거운 함성과 박수소리에 렛츠런파크 서울 관람대가 크게 들썩였다.
"2000승을 달성하기 전까진 주위에서 '도대체 언제 달성하냐'며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는데 정작 달성하고 나니 관심이 수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예상은 했지만, 정작 관심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웃음)"
오랜 시간 박태종 기수의 가슴을 억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진 때문인지, 인터뷰 내내 박태종 기수의 얼굴은 부드러웠다. 속칭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인터뷰 시 말수가 적고 조용하기로 유명한 박태종 기수였기에, 2000승 달성의 홀가분함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박태종 기수 역시 "2000승이 가까워져오자 초조해졌다. 반면, 주변의 기대감은 계속 높아져 예기치 않게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며 "그러다 슬럼프 끝자락에서 가까스로 1승을 거뒀는데, 덕분에 다시 마음이 가벼워져 2000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마치 오랜 시간 쌓아뒀던 숙제를 끝낸 느낌"이라고 했다.
지금은 '살아있는 전설', '경마대통령'이라 불리며 한국경마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인물로 자리매김했지만 사실 박태종 기수는 포크레인 기사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기수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포크레인기사 또는 택시기사 둘 중 하나가 됐을 거다"라며 "실제로 기수생활을 하기 전에 잠시 몸을 담았던 분야이기도 하다"고 수줍게 말했다. 박태종 기수가 포크레인에서 경주마로 탈것을 옮기게 된 것은 이모부 덕분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모부가 기수후보생 모집 포스터를 보고 박태종 기수에게 기수생활을 권한 것이다.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된 기수생활이지만 박태종 기수는 기수야말로 자신의 천직이라 말했다. 그는 "처음 기수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 순간부터 기수가 나의 천직이라 생각했다. 지금껏 몇 번이나 크고 작은 사고로 상처를 입었지만 회복되면 다시 말에 오르고 싶어 누워있을 수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2000승을 달성한 현재도 박태종 기수는 기수라는 직업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처음부터 말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기수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말을 사랑하게 된 것"이라며 "그런 점들 때문에 더욱 기수로서의 삶을 버릴 수 없게 됐다. 2000승을 달성한 현재도 목표는 말을 탈 수 있는 순간까지 기수로서 경주로를 달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조교사로의 전향을 묻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아직까지 조교사를 염두에 두고 뭔가를 준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지친 기색 없이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 5시부터 경주마에 오른다는 그. 타고난 기수체질인 것도 있지만 평소 술, 담배를 멀리하고 자기관리에 엄격했던 덕분에 지금도 체력은 젊은 기수 못지않다. 요즘도 매주 기승할 경주마들의 동영상을 보며 공부하고, 운동과 조교에 빠짐없이 참여한다는 박태종 기수를 보고 있자면 '경마대통령'이란 별명이 거저 붙은 게 아니다란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박태종 기수는 경마대통령이란 별명에 쑥스러워했다. 그는 "사실 부담스럽다. 대통령이라는 게 최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인데 나보고 대통령이라고 하니, 계속 뭔가를 해야 될 것처럼 느껴진다"며 웃었다. 사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별명은 '따이종'이다. 친한 주변인들만 알고 있는 별명으로 아주 오래된 경마팬들만이 기억하는 애칭이기도 하다.
그는 "1995년도에 인도아시아경마대회에서 2연승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인도사람들이 나를 보고 '따이종'이라고 외쳤다"며 "박태종이란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해 '따이종'이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외국에서 우승을 거머쥔 다음 들은 말이라 더욱 애착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당시 박태종 기수와 함께 인도를 방문했던 경마관계자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따이종'아라 부르다보니 친한 사람들 사이에선 어느새 '따이종'으로 통한다는 박태종 기수. 그는 "예전에 예시장에서 팬 중 한분이 '따이종'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상당히 놀랍고 반가웠다"고 미소를 지었다.
30년 동안 기수생활에 몸담은 만큼, 기억에 남는 경마팬도 많다. 그는 "지난 주 2000승을 달성한 후 렛츠런파크 서울 솔밭정원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는데, 팬분들 중 한분이 '2000승을 할 때까지 2000번 짝사랑해왔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한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팬들은 1998년도 입원 당시, 병문안 왔던 분들"이라며 "그분들 중 한분이 본인 회사에 참한 아가씨가 있다며 한분을 소개시켜줬는데, 그렇게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다"며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주는 1999년 5월에 펼쳐졌던 코리안더비 대상경주다. 당시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인 '자당'을 극적으로 추월하며 역전승을 일궜던 경주로, 그날은 아내와 딸이 처음으로 렛츠런파크 서울을 찾은 날이기도 했다. 그는 "그 딸이 벌써 고등학생이 됐다"며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경주에서 멋진 추입을 통해 우승을 거둬들여 상당히 기뻤다"고 했다.
2000승이란 대업을 달성했지만 아직도 박태종 기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50세가 넘은 그의 눈은 현재 젊은 기수들을 향해 있다. 그는 "이현종 기수, 김동수 기수, 조재로 기수 등 요즘 젊은 기수들을 보면 진짜 체계적으로 기승술을 배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얼마 전 기수협회에서 기수교육 신청자를 모집했는데,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수줍음에 차마 신청서를 내진 못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기승기 교육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다른 방식으로 뒤늦게 신청의사를 표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기수생활에도 정년퇴직이란 게 있다면 바로 그 순간까지 고삐를 잡고 싶다는 박태종 기수. 2000승의 대업은 끝났지만 여전히 박태종 기수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