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투수전(great pitching duel)'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요즘처럼 타고투저 현상이 뚜렷한 KBO리그에서 선발투수간의 팽팽한 대결은 돋보일 수 밖에 없다. 19일 인천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는 양팀 선발투수간 투수전이 흥미롭게 전개됐다. SK는 메릴 켈리, 롯데는 왼손 브룩스 레일리를 선발로 내세웠다. 전날까지 시즌 성적은 켈리가 2승3패, 평균자책점 3.40, 레일리는 4승4패, 평균자책점 2.98이었다. 둘 모두 6~7이닝을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투수라 경기전부터 1~2점차 승부가 전망됐다.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두 투수 모두 적극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과 맞혀잡는 피칭으로 투구수를 최소화했다. 제구력도 막상막하였다.
선취점을 내준 쪽은 레일리였다. 레일리는 1회말 안타와 볼넷을 1개씩 내주며 위기에 몰렸지만 무실점으로 넘겼다. 그러나 2회 SK 선두타자 최승준에게 초구 146㎞짜리 직구를 몸쪽으로 던진 것이 우월 홈런으로 연결됐다. 약간 빗맞았지만, 타구는 오른쪽 파울 폴대 안쪽으로 살짝 넘어갔다. 레일리의 실투라기보다 최승준이 힘을 실어 잘 밀어쳤다. 그러나 레일리는 3회부터 6회까지 4이닝 동안 12타자를 연속 범타로 제압하며 기세를 과시했다. 140㎞대 중반의 묵직한 직구와 정교한 컨트롤이 발군이었다.
켈리 역시 안정감 넘치는 피칭을 이어갔다. 1회초를 삼자범퇴로 막은 켈리는 2회 1사후 김상호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았지만 강민호와 황재균을 가볍게 범타로 처리했다. 3회 2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본인의 실수보다는 수비 실책의 영향이 컸다. 1사후 김대륙에게 127㎞ 커브를 던지다 우중간 3루타를 맞고 아두치를 1루수 땅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 점을 허용했다. 이어 김문호에게 우익수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2루타를 허용한 켈리는 손아섭 타석때 포수 김민석이 2루로 던진 견제구가 2루수 김성현을 맞고 옆으로 굴절되는 사이 2루주자 김문호가 홈을 파고들어 2-1로 역전을 허용했다.
그러나 켈리는 4~5회를 연속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위력을 떨쳤다. 켈리는 6회 선두 오현근에게 중전안타를 맞았지만 김문호를 147㎞ 직구로 1루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 7회 2사후에는 황재균과 정 훈에게 연속안타를 맞고 우익수 정의윤의 실책으로 2,3루까지 몰렸으나, 김대륙을 152㎞짜리 강속구로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실점을 막았다.
7회까지 롯데의 2-1 박빙의 리드. 먼저 마운드를 내려간 것은 레일리였다. 7회말 2사 1,2루의 위기를 벗어난 레일리는 8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투구수가 91개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SK가 선두 최정민 대신 우타자 이현석을 대타로 내보내자 롯데 벤치는 레일리를 우완 윤길현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윤길현은 2사후 박정권과 최 정에 연속타자 홈런을 얻어맞고 2-3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7이닝 3안타 1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펼친 레일리의 선발승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SK 켈리에게는 선발승 요건이 주어졌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랄까. 켈리는 9회초 선두 최준석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1사 1루서 마무리 박희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하지만 박희수는 강민호에게 우전안타를 맞고 1사 1,3루 상황에서 황재균을 삼진 처리한 후 정 훈에게 1루쪽 내야안타를 내주며 동점을 허용했다. 8⅓이닝 7안타 3실점으로 역투한 켈리의 시즌 3승도 없던 일이 됐다. 이어 박희수는 김주현과 손용석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하면서 추가 1실점해 3-4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9회말 손승락이 1점차 리드를 지켜 긴박하게 흘러간 경기는 롯데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인천=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