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은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의 가장 큰 무기다.
90분 그라운드의 전쟁터에서 판을 흔들기 위해 진담과 농담을 적절히 구사한다. 그 바탕에는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최 감독 특유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올 시즌 전북은 이동국 김보경 이재성 레오나르도 등 국가대표급 막강 공격라인의 하모니로 세간의 평가를 증명해왔다. 2016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E조를 1위로 통과한 전북의 맞상대는 멜버른 빅토리(호주)다. 앞서 조별리그 G조에서 멜버른과 두 차례 맞대결 했던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은 "전북 정도의 전력이면 멜버른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전망했다. 수원은 멜버른과의 두 차례 맞대결에서 0대0, 1대1로 비긴 바 있다.
그런데 멜버른전을 앞둔 최 감독은 짐짓 신중한 표정이다. 장난스런 입담은 오간데 없고 진지하기만 하다. 최 감독은 16일(이하 한국시각) 호주 멜버른의 렉탱큘러스타디움에서 열린 ACL 16강 1차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여유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멜버른이 치른 조별리그 경기를 분석해보니 팀 조직력이 상당히 좋더라. 16강에 오를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신중한 경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다. 호주 원정은 모든 팀들이 두려워 하는 무대다. 단순히 상대의 실력 때문 만은 아니다. 남반구의 호주는 북반구의 국가들과 정반대 기후를 보인다. 게다가 최대 하루가 걸리는 이동거리도 문제다. 때문에 대부분의 팀들이 이미 체력을 소진한 가운데 승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멜버른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홈 3경기서 무패(2승1무)를 기록하며 단단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전북과 멜버른은 구면이다. 지난 2014년 ACL 조별리그에서 두 차례 맞붙었다. 당시 전북은 멜버른 원정을 경험했다. 썩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선제골을 내준 뒤 이동국이 후반 연속골을 터뜨리며 승기를 잡았으나 막판 체력저하 탓에 결국 2대2 무승부에 그쳤다. 안방에서 열린 리턴매치에서도 0대0으로 비겼다. 이 두 차례 무승부가 걸림돌이 된 전북은 당시 조별리그 2위로 16강에 올랐고 포항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하는 불운을 겪은 바 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2년 전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 멜버른 원정을 준비했다. 선수단 숫자는 최소화 했다. 선발로 나설 11명과 교체명단에 넣을 5명 등 16명 만을 데리고 원정에 나섰다. 브라질 출신 외국인 선수 루이스를 제외했지만 이동국 김보경 이재성 레오나르도 등 주축 자원들은 모두 포함시켰다. 경기 하루 전인 16일에야 멜버른 현지에 도착했지만 앞서 휴식을 취한 만큼 체력적인 문제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객관적 전력에서 전북이 멜버른에 비해 앞선다는 평가지만 신중한 경기를 통해 원정 다득점을 얻는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ACL에선 원정골(종합전적과 득점이 같을 경우 원정 득점 우선) 규정이 적용된다.
최 감독은 "선수들의 컨디션과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 멜버른은 홈경기이고, 조별리그에서 강했다. 수비 위주의 경기를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없다. 정상적이고 신중한 경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멜버른엔 공격 쪽에 위협적인 선수들이 있다"면서도 "우리도 그 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멜버른은 한두 명의 선수가 아니라 팀 전체의 조직력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팀이다. 이에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빈 무스카트 멜버른 감독은 자신 있는 모습이다. "전북은 레오나르도와 이동국에 의존하는 팀 같다. 많은 준비했기 때문에 내일 경기는 자신 있다"고 말했다. 과연 최 감독의 신중함이 멜버른의 자신감을 꺾어 놓을 수 있을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