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와 포항. 두 팀은 K리그의 역사를 관통하는 라이벌이다.
고비 때마다 맞상대로 희비가 엇갈렸다. 화려한 진용을 앞세운 울산은 '만년 우승후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울산 못지 않은 스타들이 거쳐가며 K리그와 아시아 무대를 정복했던 포항의 자존심 역시 대단하다. 두 팀이 맞붙을 때마다 선수단 뿐만 아니라 K리그 전체가 들썩였다. 90분의 그라운드는 명승부의 향연이었다. '꽁지머리 골키퍼' 김병지의 거짓말 같은 헤딩골, 우승 잔치를 준비하던 울산을 망연자실케 했던 포항 수비수 김원일의 극장골 등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양팀 팬들의 자존심 싸움도 대단했다. K리그 전체가 들썩이는 두 팀의 맞대결은 '동해안 더비', '영남더비', '7번 국도 더비' 등 갖가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목할 만한 더비로 꼽은 이유가 있었다.
14일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었다. 올해의 첫 동해안 더비. 화제가 될만한 이야깃거리는 없었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 '0'은 90분 내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관중석도 헐렁해보였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6983명에 불과했다.
수치로 드러난 공격은 활발했다. 울산은 이날 14개의 슛 중 11개가 유효슛으로 연결됐다. 포항도 13개의 슛 중 8개가 울산 문전으로 향했다. 전반 8분 골대를 강타한 박성호(울산)의 다이빙 헤딩슛, 후반 19분 김진영(포항)의 선방에 막힌 정승현(울산)의 헤딩슛 등 좋은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헛심공방이었다. 선굵은 축구로 '철퇴'라는 호칭을 얻었던 울산이나 최근 수 년 동안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패스 플레이로 상대 공간을 헤집었던 포항 양 팀 모두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고유한 색깔로 그라운드를 물들이는데 실패했다. 단조로운 패턴과 뻔한 움직임 속에 골에 대한 희망으로부터 점점 멀어졌을 뿐이다. 10경기 7골로 리그 최소 득점을 기록 중인 울산이나, 최진철 감독 부임 이후 확실한 공격루트를 찾지 못하고 있는 포항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 승부였다.
물론 희망적인 부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울산은 박성호 활용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동안 원톱 이정협에게만 의존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박성호와 역할 분담으로 상대 수비라인을 공략한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최근 스리백으로 전환한 포항은 최근 수 년간 골문을 지켜온 주전 골키퍼 신화용의 부상으로 대신 그라운드를 밟은 김진영의 선방쇼가 위안거리였다.
10경기를 마친 현재 울산은 클래식 12팀 꼴찌 인천(8골)보다 적은 득점 가뭄(7골) 속에 8위(승점 11)에 머물러 있다. 포항(승점 13)도 상주(승점 14)에 밀린 6위다. 오는 6월 29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예정된 두 팀의 리턴매치는 과연 '동해안 더비'라는 명성에 걸맞는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