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에게 초구는 생명선이다.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높은 투수가 결국 잘 던지는 투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바깥쪽 낮은 코스에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 능력만 있다면 기본 10승이다.
타자에게도 초구는 생명선이다. 노리는 공이 왔다면 어김없이 방망이를 돌려야 한다. 결과는 다음 문제다. 요즘 감독들은 무사 만루에서 투수의 영점이 흔들리고 있어도 웬만해서 웨이팅 사인을 내지 않는다. 자신의 '존'으로 날아왔다면 초구부터 승부를 보라는 의미다.
이는 기록적으로도 확률 높은 방법이다. 지난해 리그 평균 타율은 0.280, 초구를 쳤을 때는 0.363다. 정규시즌 MVP 에릭 테임즈(NC 다이노스)가 무려 0.613,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0.525)가 그 뒤다. 올해도 수치는 비슷하다. 2일 현재 리그 평균 타율은 0.271, 초구 타율은 0.361이다. 극심한 슬럼프가 아니라면, 초구를 때려 평소보다 결과가 나쁜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두산 베어스 오재일(30)이 시즌 초반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초구'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닉 에반스 대신 4번을 맡고 있는 그는 "주저없이 또 자신있게 방망이를 돌리면서 결과도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박철우 코치님이나 김태형 감독님이 '너의 존으로 들어오면 무조건 돌리라'고 작년부터 주문하셨다. 최대한 그 말을 따르고 있는데, 잘 맞은 타구가 나오고 내 타격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서 기대 이상의 타율을 마크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주까지 오재일의 타율은 정확히 4할이다. 22경기에서 28안타(70타수)를 때렸고 홈런 4방에 타점이 15개다. 초구 타율은 그보다 더 높은 0.556. 그러면서 롯데 자이언츠 김문호(0.433)에 이어 타율 부문 전체 2위다. 두산 선수 중 개막부터 꾸준한 감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타자다. 스스로도 "밸런스가 나쁘지 않다. 페이스가 조금 떨어졌긴 해도 그리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며 "잘 맞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자신감이다.
'감'이 좋다던 그는 5월 첫 경기에서도 손 맛을 봤다. 1일 광주 KIA전에서 1-0이던 4회 양현종의 초구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비거리 105m짜리 우월 솔로 홈런으로 연결했다. 시즌 4호. 오재일은 불과 2년 전만해도 왼손 투수에게 극도로 약하다는 인상을 줬지만, 이제는 약점도 사라진 모양새다. 현재 우투수에게 0.378, 옆구리 투수에게 0.375, 왼손 투수를 상대로는 타율이 0.440이다. 변화구 대처가 되고 실투를 놓치지 않으면서 만들어진 '반전'의 기록이다.
하지만 타율이나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그는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오늘 경기는 오늘로 끝, 내일 경기는 내일로 끝이다"며 "매일 내 몫을 하자고 마음 먹을 뿐이다. 팀 분위기가 좋은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이어 "사실 스윙이 처져 나오는 편이라 캠프 때만 되면 늘 이 부분을 고치려고 했다. 올 캠프에서도 같은 훈련을 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기술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부분이 크다. 꾸준히 선발로 나가면서 심적으로 편하게 타격하고 있다"고 웃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