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에게는 감정이 없다. 철저하계 정확한 계산만을 한다. 그런데 '양파고'에는 계산력 더하기 따뜻함이 있었다. 한 젊은 투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애쓰고 애쓴 결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LG 트윈스가 시즌 초반 잘나가고 있다. 하위권 후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를 비웃 듯이 7승5패를 기록하며 3위를 달리는 중이다. 젊은 선수 위주의 팀 개편으로 감독 인생 최대 도전에 나선 양상문 감독의 기분도 좋을 듯 하다.
하지만 12경기를 치르며 머리도 아팠다.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마무리 임정우 때문이다. 올시즌을 앞두고 공개 경쟁을 통해 LG 마무리 자리를 차지한 임정우. 하지만 처음 맡는 중책이어서 그런지, 자기 공을 뿌리지 못했다. 17일 한화 이글스전 전까지 7경기 1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6.00. 1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9회 흔들리며 이승현과 교체를 당하고 말았다. 이닝 도중 교체, 마무리 투수 자존심에 큰 상처다.
하지만 이 때부터 양 감독이 임정우 심폐소생술에 들어갔다. 치밀한 계획대로 진행됐다. 13일 롯데전을 앞두고 "세이브 상황이 나오면 임정우를 내보낸다"며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이날 경기 5-3으로 앞서던 9회 임정우를 내지 않았다. 베테랑 이동현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임정우 입장에서는 '아, 이제 감독님이 나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실망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이는 양 감독의 배려였다. 하루 전, 경기를 제대로 풀지 못한 어린 투수가 곧바로 급박한 세이브 상황에 오른다면 더 큰 부담을 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기 때문. 그리고서는 일찌감치 롯데쪽으로 승기가 기운 14일 경기 마지막 1이닝을 던지게 했다. 편한 상황 투구로 자신감을 찾으라는 의미였다. 임정우는 모처럼만에 실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와의 3연전이 이어졌다. 15일 경기 18대2 대승, 16일 경기 우천 취소. 그리고 17일 3연전 마지막 경기. 6점을 내고 크게 앞서던 LG는 경기 막판 한화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4-6까지 쫓아왔다. 그리고 9회가 됐다. 양 감독은 임정우를 기용하지 않았다. 8회 1사 후 마운드에 선 이동현이 그대로 나왔다. 양 감독이 승리를 위해 냉철하게 임정우 기용을 다음 기회로 미루는 듯 했다. 선두 김태균이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했지만, 이동현이 안정감있는 투구로 정현석을 삼진 처리했다. 하지만 양 감독은 1사 후 임정우를 내세웠다. 주자가 나가있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임정우에게 공을 건넸다. 이례적으로 마운드에 직접 올라 임정우가 연습투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격려해줬다. 9회 이동현을 먼저 투입한 건 임정우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아웃카운트 1개를 잡은 상황, 임정우가 심적으로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공을 던질 여건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렇게 임정우를 위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임정우는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로사리오 삼진, 하주석 2루 땅볼로 경기가 끝났다. 우여곡절 끝 시즌 2번째 세이브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마무리 중책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벌벌 떨던 임정우가 한단계 더 성장하는 순간이기도 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임정우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양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었다. 천천히, 한 단계씩 부담을 덜고 마운드에서 제 공을 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마지막 칭찬도 잊지 않았다. 양 감독은 경기 후 "마무리 임정우가 좋은 투구를 해 승리 이상의 뜻깊은 경기를 했다"고 코멘트했다. 그렇게 양 감독의 임정우 살리기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