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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K뮤지컬컴퍼니의 '마타 하리(Mata Hari)', 창작 뮤지컬의 새 지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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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위태로운 삶이 조금씩 숨을 쉬어/ 꺼져가던 꿈은 지금 내 앞에 찬란히 빛나/ 그로 인해 난 날 찾게 됐어/ 그의 믿음 속에/ 그 눈빛에 비친/ 예전의 그 소녀."(마타 하리의 아리아 '예전의 그 소녀' 中)

파리 물랭 루즈에서 가장 인기있던 댄서가 역사의 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파이가 되고, 죽고 죽이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그녀는 이중 스파이로 몰린다. 결국 형장의 이슬이 되어 짧은 생을 마감한다. 바로 마타 하리다.

약 1세기 전, 네덜란드 출신으로 온 유럽을 뒤흔들었던 여인 마타 하리(본명 마가레타 거트루드 젤르)의 드라마틱한 삶이 우리 자본과 노하우를 통해 서울 한복판에서 되살아났다.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 중인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 '마타 하리'다.

뮤지컬은 파리 물랭 루즈의 빛나는 댄서였던 마타 하리가 죽기 직전, 파리 교외의 어느 들판에서 절규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왜 스파이가 되었을까, 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타 하리'는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난 한 여인의 삶을 추적하면서 인간성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선다. 바로 사랑의 순수함이다.

'엘리자벳', '모차르뜨!', '팬텀' 등 잇단 화제작을 통해 2010년 이후 국내 뮤지컬 산업을 주도해온 EMK뮤지컬컴퍼니가 세계 시장을 겨냥해 4년 여의 준비 끝에 내놓은 글로벌 프로젝트다.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그의 파트너 작사가 잭 머피가 콤비를 이루었고, '뉴시즈' '하이스쿨 뮤지컬'의 제프 칼훈이 연출을 맡았다. 당대 최강의 크리에이티브팀이다.

사실 이와 비슷한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갬블러'의 에릭 울프슨(작곡), '죽음과 소녀'의 아리엘 도르프만(극작)을 기용한 신시컴퍼니의 '댄싱 셰도우'(2007), 프랭크 와일드혼이 역시 작업한 설앤컴퍼니의 '천국의 눈물'(2012)이 그렇다. 앞의 두 작품이 우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마타 하리'는 외국 이야기를 갖고 왔다는 점이 차이다. 해외시장을 겨냥한 포석이다.

관록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36곡의 드라마틱한 넘버들을 통해 순수한 사랑을 갈구한 한 여인의 삶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했다. '예전의 그 소녀' '마지막 순간' 등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잭 머피의 노랫말도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그에 앞서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오필영 디자이너의 무대다. 그야말로 넋을 쏙 빼놓는다. 약 30개의 모터를 하나의 콘솔로 제어하는 무대 장치를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세트를 무대 위에 구현했다.

마타 하리 역의 옥주현, 아르망 역의 송창의, 라두 대령 역의 류정한 등 중량급 배우들의 열연 또한 무대를 빛내고 있다.

초연인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너무 설명적인 대사들이 많아 이야기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1막이 그렇다. 임춘길이 맡고 있는 해설자 역의 캐릭터도 어정쩡하다. 해설자 역은 대개 풍자극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캐릭터인데 이 작품 색깔과는 맞지 않아보였다. 그러다보니 마타 하리의 기구한 외면적 삶과 순수한 내면 세계의 대조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배우들이 캐릭터잡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하다.

하지만 몇몇 단점에도 EMK 뮤지컬컴퍼니는 제작 능력에 관한 한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다. 당장 브로드웨이에 갖다놔도 손색없는, 세련된 무대를 구현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수많은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만들어온 경험을 이 한 편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창작뮤지컬이 여기까지 왔다.

'마타 하리'는 6월 1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