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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토리] 염경엽 감독이 밝힌 서동욱 트레이드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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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를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일반적으로 트레이드는 '손익 계산'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선수를 보내거나 받는 행위를 통해 감독, 그리고 구단은 팀 전력에 이득을 얻으려 한다. 이게 지금까지 KBO리그에서 이뤄진 거의 모든 트레이드의 속성이었다. 결국 트레이드는 지극히 이기적인 속성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은 이런 트레이드의 일반적인 관행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보기 드물게 이타적인 관점에서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6일 오전, 팀내에서 입지가 사라진 서동욱(32)을 아무런 조건없이 KIA 타이거즈로 보낸 것이다. 넥센이 서동욱을 보내며 KIA로부터 받은 건 아무것도 없다. 선수도, 현금도 받지 않았다. 그냥 서동욱을 KIA로 보낸 게 전부다.

지금까지의 트레이드 관행에 비춰보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도대체 염 감독은 왜 이런 트레이드를 하게 된 것일까. 트레이드가 이뤄진 뒤 6일 오후, 염 감독에게 직접 들어봤다.

▶배경 1 : 채태인 영입의 나비 효과

분명한 것은 서동욱의 트레이드가 순식간에 이뤄졌다는 점. 사실 염 감독은 시범경기 초반까지도 서동욱을 트레이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1군 주전멤버로 쓸 수는 없지만 언젠가 기회를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수층이 빈약한 넥센의 현실을 비춰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갑자기 큰 변수가 생겼다. 넥센이 지난 3월22일 삼성과 1대1 트레이드를 통해 1루수와 지명타자가 가능한 좌타자 채태인을 받아온 것. 이로 인해 서동욱의 팀내 입지는 사실상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염 감독은 "솔직히 말해서 채태인의 트레이드 영입이 아니었다면 서동욱을 트레이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채태인이 오면서 서동욱의 자리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팀내에서는 역할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트레이드를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염 감독의 이런 결심은 본질적으로 팀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서동욱 개인을 위한 것이다. 오로지 서동욱의 미래만 생각했다. 염 감독은 "채태인의 합류로 자리를 잃게 된 서동욱의 미래를 생각해봤다"며 "선수를 그냥 죽일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우리 팀에서 2군에 마냥 남겨둔다면 결국 서동욱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팀에서라도 새로운 기회를 얻어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배경 2 : 서동욱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

대단히 냉철하면서도, 큰 배려가 담긴 판단이다. 넥센에 남겨놔봐야 '선수 서동욱'의 미래는 없다. 이제 겨우 32대 초반의 선수를 그렇게 소모해버리는 건 '야구선배'의 입장에서 해서는 안될 일이다. 염 감독의 판단은 이렇게 이어졌고, 끝내 트레이드 결정으로 귀결됐다.

생각을 정리한 염 감독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런 파격적이고 색다른 트레이드를 수용해줄 수 있는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상대는 바로 염 감독의 광주일고 동기이자 절친인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이었다. 김 감독이라면 자신의 뜻을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감독도 처음에는 염 감독의 의도를 100%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염 감독은 "김기태 감독에게 트레이드를 제안한 뒤 '무조건'이라고 하자 '설마 그럴리가'라고 의아해 하더라. 그래서 다시 한번 아무 조건없이 보내겠다는 걸 강조했다"고 했다. 이어 염 감독은 "솔직히 서동욱과 맞는 트레이드 카드도 없었다. 거기서 누굴 달라고 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해서 현금을 받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사실 현금 트레이드를 추진했다면 몇 천만원은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게다가 지금 우리 팀은 과거 (돈을 받고 선수를 보냈던) 이미지를 버려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현금 트레이드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넥센의 서동욱 트레이드는 염 감독의 이타적 판단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향후 결과가 어떻게 되든 염 감독은 '야구 선배'로서 서동욱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셈이다. 다른 9개 구단 감독들도 적어도 한 번쯤은 음미해볼 만한 통큰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