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세리머니를 하던 선수들이 분주해졌다.
링크에 발을 들인 한 신사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는 우승트로피를 건냈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61)은 선수들을 끌어안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선수들은 헹가레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6년만에 거머쥔 아시아리그 통합우승. 선수단의 뜨거운 투지가 만든 기적이었지만 정 회장의 이름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정 회장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1998년 부도 위기 속에서 구단을 지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 회장은 한국 아이스하키의 발전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라의 한해 운영비는 45억에서 50억원에 달한다. 웬만한 프로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금액이다. 아이스하키가 비인기 종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투자다.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맡은 이 후에는 사재 20억원을 들여 대표팀 경기력 향상에 많은 공을 들였다.
단순히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1994년 한라 아이스하키단을 창단한 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스링크장을 지켰다.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한라 홈 경기가 열릴때는 아예 약속을 잡지 않는다. 해외 원정도 특별한 일정이 있지 않으면 빼먹지 않는다. 당연히 이번 사할린 원정에도 함께 했다. 힘든 원정길에 나선 선수단을 위해 응원단도 함께 했다. 그룹 직원들로 구성된 응원단은 한라의 든든한 서포터스다. 경기 내내 정 회장은 선수들과 함께 뛴다. 자리에 앉는 법이 없다. 선수들이 다치면 직접 찾아가 상태를 확인한다. 이기거나, 지거나 묵묵히 뒤에서 선수들을 격려한다. 마지막 5차전을 앞두고는 "실수 하는 것은 괜찮다. 질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는 것은 패배보다 나쁘다"는 말로 선수들을 깨웠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정 회장의 격려를 이구동성 입에 올렸다.
아이스하키에 대한 사랑은 정 회장 뿐만이 아니다. 아내 홍인화씨(60)는 이제 정 회장 보다 더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졌다. 정 회장이 바쁜 일정으로 자리를 떠도 끝까지 남아 선수들을 응원한다. 선수들을 자식 같이 아낀다. 모바일 메신저로 선수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선수들에게는 직접 반찬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선수들도 정 회장 부부의 열성에 마음을 열었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가장 먼저 알리는 이가 정 회장 부부다. 한라에서만 8년째 뛰고 있는 김기성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한결 같이 우리 아이스하키를 지켜주는 부모님 같은 분들"이라고 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한라는 성장을 거듭했다. 2015~2016시즌 아시아리그 통합우승은 그 결실이다. 정 회장은 2003년 아시아리그 출범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한라는 일본의 고쿠도에 1대11로 참패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길을 걸었고 결국 2009~2010시즌 통합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이후 암흑기를 보낸 한라는 대대적인 전력 개편에 나서며 다시금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창영 수석코치는 "우리 보다 더 열심히 하는 정 회장님의 존재로 항상 더 노력한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한국 아이스하키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웃었다.
한라의 도약은 정 회장이 그리는 한국 아이스하키 발전의 첫 단계다. 정 회장은 첫째 한라의 아시아리그 우승, 둘째 내년 2월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우승, 셋째 평창동계올림픽 선전을 3단계 청사진으로 그렸다. 이제 대표팀이 아시아 톱에 오를 차례다. 맷 달튼, 에릭 리건의 영입과 귀화는 단순히 한라의 전력 향상이 아닌 한국 대표팀 발전이라는 지상명제를 위한 결단이었다. 백지선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남자 대표팀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표팀의 주축인 한라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은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귀화 선수들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당면 과제는 평창올림픽이지만 정 회장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평창 이후가 진짜 한국 아이스하키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회가 닿을때마다 유소년-지도자-심판 육성에 힘을 실을때라고 강조, 또 강조한다. 우승 후 선수들에게도 좋은 지도자가 될 준비를 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우승에 들떠있던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진정으로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회장님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사할린(러시아)=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