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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선수 뒤에 숨은 삼성, 명문구단 자격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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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그냥 아주 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말 김 인 당시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소속 선수들의 '불법 해외원정도박'에 관해 대국민 공식사과를 하면서 '선수들이 억울해 한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며 고개를 숙이는 자리인데도, 뒷맛을 남겼다. 임창용과 윤성환, 안지만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한 상황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정말 억울하고, 떳떳하다면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 고개를 숙일 게 아니라 설득력있는 방법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나마 삼성 구단이 '불법 해외원정도박' 문제로 공식 입장을 밝힌 건 이때 뿐이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3일 안지만을 1군 엔트리에 등록하고, 윤성환을 6일 kt 위즈전에 선발 투수로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성환과 안지만은 이날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으로 사과했다. 그런데 윤성환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안지만은 윤성환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자리를 떴다. 왜 사과를 하는 건지 핵심 내용은 쏙 빠져 있었다. "팬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앞으로 야구에만 전념하며 팬들께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겠다"는 불명확한 말만 던지고 1분만에 끝났다.

구체성이 떨어지는 알맹이 없는 사과,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사과로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노심초사하고 있는 류중일 감독,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선수를 방패막이 삼은 채 구단은 뒤로 빠져 있었다. 정말 삼성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끌어온 '불법 해외원정도박' 문제를 요식행위같은 '1분짜리' 사과로 털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돌아보면 지난 6개월간 삼성은 한결같이 뒷짐을 지고 있었다. 경찰 조사가 나오기 전까지, 징계가 어렵다는 원칙론을 고수했다. 프로야구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인인데도, 여론의 눈치만 보며 회피했다. 지난달 21일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핵심 피의자(마카오 카지노 내에 따로 마련한 도박방 운영자)가 외국에 있어 빠른 수사 진행이 어렵다. 선수 보호를 위해 참고인(연루된 선수) 조사 중지를 하든지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 당장 경찰 조사가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자, 기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삼성이 명문구단이라면, 품격에 맞게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소속 선수의 관리도 어디까지나 구단 책임이다. 삼성은 그동안 경찰과 선수, 감독 뒤에 숨어 있었다. 지금까지 태도를 보면, 정말 명문구단인지 의심스럽다.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삼성은 국내 구단 중 처음으로 메이저리그팀과 교류를 시작했고, 체계적인 팜시스템을 운영했다. 삼성의 2군 구장 경산볼파크는 다른 팀들이 선망하는 곳이었다. 오랫동안 삼성은 'KBO리그를 선도하는 팀'이라는 자부심을 가질만 했다.

한때 성적을 위해 최고의 FA(자유계약선수)를 끌어모아 '돈성(돈을 많이 쓰는 삼성)'이라는 달갑지 않은 말을 들었는데, 최근 몇 년간 선수 육성에 성공하고, 뛰어난 성적을 내면서 KBO리그 최고의 팀으로 도약했다. '돈만 많이 쓰는 팀'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명문구단'으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삼성이 '불법 해외원정도박'에 대처하는 걸 보면, 여전히 '성적에 급급한 팀'이라는 생각이 든다.

케이스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삼성을 보면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떠오른다. 소속 선수들의 야구도박 사실이 불거지자 일본야구계의 실력자 와타나베 스네오 구단 고문을 비롯한 요미우리 구단 최고위 관계자 3명이 사퇴했다. 명문구단이라면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같은 태도라면 '명문'이라는 간판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포츠1팀장·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