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무슨 상관인가. 선수들이 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R리그(2군리그)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29일 경기도 구리의 GS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FC서울 관계자의 말이다.
K리그 클래식 FC서울의 훈련장인 챔피언스파크는 이날 만큼은 미래의 스타들을 위한 자리였다. FC서울이 만난 팀은 '한 지붕 두 가족'인 서울 이랜드(이하 이랜드)였다. '천만수도' 서울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역사적인 첫 대면은 클래식, 챌린지(2부리그)가 아닌 R리그에서 먼저 꽃을 피웠다.
2012년을 끝으로 폐지됐던 R리그는 올해 4년 만에 부활했다. K리그 클래식의 23세 이하(챌린지 22세 이하) 의무출전 정책에 따른 선수들의 안정적인 K리그 적응과 경기력 향상을 위함이다. 출전자격은 23세 이하 국내선수는 무제한이며 23세 이상은 외국인 포함 최대 5명에 한한다. 또 산하 유소년이나 우선지명 선수는 해당 구단의 R리그 경기 출전에 선수 수 제한이 없다. 테스트선수도 대한축구협회 등록 23세 이하 선수를 대상으로 2명까지 가능하다. 저비용 운영을 원칙으로 시상제도나 수당제는 별도로 없으며 권역 내 이동을 통한 비용 최소화를 도모했다.
'서울 더비'의 첫 장소는 당초 구리가 아니었다. 고양, 구리 등 서울 근교 지역 경기장 내지 홈 자격을 부여받은 이랜드의 청평 클럽하우스 내 연습구장에서 가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부상 위험, 경기장 섭외 어려움 등이 겹치자 FC서울이 손을 내밀면서 그라운드 여건이나 접근성이 용이한 구리로 경기장소가 확정됐다. 서울 구단 관계자는 "R리그 운영 취지가 더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미래에 1군 무대에서 활용 가능한 선수들을 찾자는 것"이라며 "클래식이나 챌린지 경기처럼 완벽할 순 없다. 그보다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은 선수들이 얻는 기회"라고 말했다. 참가팀들로부터 올해까지 한시적으로 R리그 23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을 유예받은 이랜드 측도 "프로 뿐만 아니라 유소년 클럽(18세 이하) 선수들에게 두루 기회를 줘 전력을 다질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내용이나 결과에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고 웃었다.
비록 비공식 경기이긴 했지만 '첫 서울 더비'에서 양팀이 자존심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날 경기에는 장기주 FC서울 대표이사와 박상균 이랜드 대표이사가 나란히 자리했다. 구단 대표가 R리그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자존심 싸움을 대표하는 장면이었다. 따로 관중석이 마련되지 않은 훈련장임에도 양팀 팬 상당수가 이날 경기를 지켜봤다. '서울 터줏대감'이었던 FC서울 팬들이 "서울 파이팅~"을 외치자 이랜드 팬들이 똑같이 "서울 파이팅~"을 외치는 재미있는 장면도 연출됐다. 경기가 펼쳐지는 메인 연습구장 옆 보조구장에서 1군 선수들의 훈련을 지휘하던 최용수 FC서울 감독도 이따금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승부욕을 드러냈다. 마틴 레니 이랜드 감독 역시 후반전부터 직접 벤치에 앉아 선수들을 지도했다. 거침없는 태클과 몸싸움 속에 퇴장자까지 나오는 등 선수들도 의욕을 불태웠다.
'비공식 서울 더비'의 승자는 이랜드였다. 후반 29분 안태현이 FC서울 문전 왼쪽에서 얻은 페널티킥 기회를 키커로 나선 조우진이 오른발로 침착하게 마무리 했고, 이랜드가 끝까지 리드를 지키면서 1대0 승리를 가져갔다.
R리그는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 이근호(제주)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들을 탄생시킨 모태다. '미래의 스타'들이 첫 발을 떼었다.
구리=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