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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전성시대]②낮은 자세로 정상 밟은 '관리자' 김세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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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플레이오프입니다."

첫 두 경기를 모두 내줬던 2015~2016시즌 NH농협 V리그 남자부 6라운드.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의 2연패를 위한 승부수였다. 줄곧 유지하던 선두를 내준 현대캐피탈에 내준 김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이 사실상 힘들다고 판단, 포스트시즌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김 감독은 승리를 의식해 선수들을 무리시키는 것보다 큰 무대를 위한 컨디션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김 감독은 "지금 우리가 몇연패를 하는지 중요치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무리하게 상황을 바꿔보려고 하다보면 또 다른 화를 입을 수 있다. 버려야 채울 수 있다고 하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 '디펜딩챔피언' OK저축은행에 대한 평가는 낮았다. 삼성화재와 대한항공의 준플레이오프 승자가 챔피언결정전에 나갈 것이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다. 자신과 팀을 낮춘 성과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단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승을 거머쥐었던, 거침없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관리자형' 김 감독의 스타일이 빛났다. 미팅을 통해 부진했던, 혹은 자신감이 떨어진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넣었다. 김 감독은 "작년에 우리의 모습을 찾고 있다. 걱정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고 미친 것처럼 플레이하는 모습, 그것이 연습에서 보이고 있다"고 웃었다. 이어 "원했던 그림으로 가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 감독의 예상대로였다. OK저축은행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화재를 2승으로 셧아웃 시켰다. 전반기 좋았던 OK저축은행의 모습이었다. 김 감독이 불어넣은 마법이었다. 부상한 이민규 대신 공격을 지휘한 곽명우가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살림꾼 송희채도 완벽한 리시브를 선보였다. 유종의 미를 원하는 '외국인 주포' 시몬은 괴력을 과시했다. 미팅을 통해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효과 때문이었다. 그래도 OK저축은행의 우승을 점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상대는 18연승의 현대캐피탈이었다. 김 감독의 3년 후배인 최태웅 감독의 스피드 배구가 정점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승부사였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스승이자 '배구의 신'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을 넘었던 김 감독의 지략이 다시 한번 통했다. "현대캐피탈을 이길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는 김 감독은 연승행진과 우승을 해야한다는 현대캐피탈의 부담감을 역이용했다. 분수령은 1차전이었다. 전문가들도 1차전 향방이 우승팀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이라 했다. OK저축은행은 역대 챔피언결정전 최장기간 경기 기록을 세우며 3대2 승리를 거뒀다. 김 감독의 '버티는 배구'가 주효했다. 그는 "경기 초반에는 현대캐피탈이 경기 감각이 떨어진 탓에 블로킹 등에서 약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세트를 거듭할수록 무서워지더라"며 "버티는 배구를 했는데 성공했다. 유효 블로킹과 수비로 상대 공격을 막아보려 했는데 다행히 통했다. 리베로 정성현이 정말 잘 막아냈다"고 했다.

분위기를 탄 OK저축은행은 2차전도 잡아냈다. 고비는 3차전이었다. 신영석의 오버네트를 두고 비디오 판독 시비가 붙었다. 결국 3차전을 내줬지만 김 감독은 경기 후 강단 있는 인터뷰로 분위기를 바꿨다. 김 감독은 "위원장이 왜 와서 판정을 뒤집냐"며 "이럴 거면 비디오판독을 뭐하러 하냐. 두 분(비디오판독관)은 왜 앉아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벌금 무서워 할 말 못하냐"며 얼굴을 붉혔다. 외부적 요인으로 패배를 돌리며 팀을 결속시키기 위한 김 감독의 묘수였다. 이는 다시 한번 통했다. OK저축은행은 똘똘 뭉치며 4차전을 승리했다.

"기적 같다"던 김 감독의 말대로 지난 시즌 우승이 운이 따랐다면, 이번 시즌은 김 감독의 치밀한 승부수가 완벽히 들어맞은 결과다. 이제 명장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바야흐로 V리그 남자부는 김세진 시대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