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새 외국인 타자 닉 에반스의 수비 포지션은 어디일까.
지난해 트리플A 타점 전체 4위에 오른 에반스는 올 시즌 4번 타순이 확정이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현수의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다"면서 "에반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갖고 있는 스윙은 나쁘지 않다"고 일본 미야자키 캠프에서부터 말했다. 키 1m87, 105㎏의 에반스는 전형적인 홈런 타자는 아니다. 방망이를 쥔 손에 위치가 다른 거포들처럼 귀 쪽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또한 테이크백 동작도 거의 없다. 컨택트형 타자로 보는 게 맞다. 구단도 "넓은 잠실 구장을 쓰는만큼 홈런보다 타점 생산 능력에 주목해 그를 데려왔다"고 했다.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김치 등 매운 음식을 즐겨 먹어 동료들이 놀랄 정도였다. 통역을 맡은 구단 관계자는 "심성도 곱다.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실전에서 부진했다. 7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21타수 4안타가 고작이었다. 타율 0.190에 3타점 삼진만 10개. 문제는 큰 스윙이었다. 비디오 영상에서 접하지 못한 폼이었다. "신인처럼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 같다." 코칭스태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김태형 감독이 그를 감독실로 불렀다. 면담을 통해 속내를 들어봤다. 이 자리에서 에반스는 의외로 "컨디션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내 스윙이 나오는 것 같다. 지켜봐 달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김태형 감독은 "알겠다. 편하게 해라. 우리는 너를 믿는다. 미국에서 했던 야구를 해달라.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힘을 실어줬다.
그는 빈말을 하지 않았다. 시범경기를 치르며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폭발력까지 과시했다. 21일 현재 타율은 어느덧 0.371. 10경기 35타수 13안타에 2홈런에 7타점이다. 출루율도 0.421, 장타율은 0.600, 그러자 "한 때 외국인 선수 때문에 기도까지 했다"던 김태형 감독은 "KBO리그에 점점 적응력을 높여가고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그렇다면 에반스는 4번 타자, 1루수로 포지션이 확정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아니다. 김 감독은 "우선적으로 4번 지명타자로 출전시키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시범경기에서 1루수로 7차례, 지명 타자로 3번 출전했지만, 4월1일 정규시즌이 개막하면 1루 미트를 끼는 일은 줄어들 것 같다. .
이는 최근 발생한 몇 가지 '일'들 때문이다. 우선 홍성흔. 창원 NC전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검진 결과 3주 진단. 개막전 엔트리 진입이 사실상 무산됐고, 당분간 2군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변수는 오재일. 시범경기에서 타격이 나쁘지 않다. 21일까지 11경기에 출전해 29타수 8안타 타율 2할7푼6리에 3홈런 9타점을 기록 중이다. 홈런은 팀 내 1위, 타점은 2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김 감독은 당초 계획한 1루수 에반스-지명타자 홍성흔 조합이 아닌, 1루수 오재일-지명타자 에반스의 모습으로 시즌 초반을 치르고자 한다. 여기에는 오재일의 수비가 에반스보다 낫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물론 확정은 아니다. 지난 시즌에 그랬듯 김 감독은 상대 투수에 따라, 야수의 컨디션에 따라 라인업에 변화를 줄 것이다. 그럼에도 일단 에반스가 4번을 맡고, 오재일이 1루 수비에 들어가는 것이 지금 전력에서 가장 이상적인 '카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재일 입장에서는 또 한 번의 기회다.
함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