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전남과의 K클래식 홈 개막전 시작 직전,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수원 삼성 라커룸.
서정원 수원 감독은 작전 지시용 화이트 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수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보드에는 이날 수원의 선발 라인업과 전남 상대 매치업이 그려져 있었다. 서 감독은 "전남도 골 결정력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얘기를 듣자 "에이, 그래도 전남은 스테보가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로부터 2시간여가 지난 뒤 인터뷰실. 수원이 전반부터 2-0으로 잘 앞서다가 경기 막판 2골을 내주며 2대2로 아쉽게 비기고 나서다.
서 감독은 인터뷰 끝무렵 "우리 팀의 가장 아쉬운 스트라이커-골키퍼 포지션은 이전부터 나타난 문제점이었다. 우려했던 부분이 경기 중에 나타나서 아쉽다"며 "그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채우지 못하고 가는 것이 상당히 마음 아프다"고 안타까워 했다.
시즌 개막 전의 기우가 아니었다.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그것도 너무 결정적인 곳이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와 최후방 골키퍼다.
수원은 이번 전남전에서 이전 4경기(아시아챔피언스리그 포함 2무2패)에 비해 내용적으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2선 공격라인은 물론 미드필드와 수비진의 압박이 좋았다. 하지만 수원은 2골 차로 앞서나가다가 막판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난 2014, 2015년 2년 연속 리그 2위를 할 때 드러내지 않았던 뒷심 부족이다.
그 원인에 스트라이커와 골키퍼 포지션 불안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예고된 인재다. 수원이 긴축재정 방침을 고수하면서 해당 포지션에 선수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원은 여태 외국인 스트라이커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갖고 있는 '재력'이 쓸만한 선수를 영입할 만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쓸 만한 자원도 컨디션 난조에 발목잡혔다.
이고르는 2월 말 감바와의 ACL 1차전을 앞두고 발가락 부상을 했다가 전남전 이틀 전에는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는 바람에 또 빠졌다. 신인 기대주 김건희는 겨울훈련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한 바람에 정상 컨디션을 찾으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제대 복귀한 조동건과 이적생 김종민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수원은 2014년 최다득점 2위, 2015년 최다득점 1위로 공격력에서 내세울 만한 팀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위력을 찾아볼 수 없다. 힘겹게 골가뭄을 해결한 전남전의 경우 조동건이 1골을 터뜨렸지만 1∼2골을 더 추가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 더 달아났더라면 어이없는 무승부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스테보-오르샤-유고비치를 가동한 전남에 비해 전방의 무게감은 수원이 크게 떨어졌다.
국가대표 베테랑 정성룡(31)이 일본 J리그로 떠난 이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려던 골키퍼에도 문제가 드러났다. 2015년 시즌이 돼서야 16경기로 출전수를 늘린 3년차 노동건(25)에게 주전을 맡겼지만 정성룡의 공백을 메우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전남전에서의 막판 2실점은 물론 파상적인 공세를 퍼붓고도 0대2로 패한 성남과의 1라운드에서도 골키퍼의 경기 운영이 불안했다. 특히 성남전에서는 상대의 올림픽대표팀 '대세' 수문장 김동건(21)의 눈부신 슈퍼세이브가 수원을 더 부럽게 만들었다.
서 감독은 "경기 내용은 좋은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다. 경기 내용마저 나쁘면 더 큰 문제인데 그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몸통은 쓸 만한 데 머리와 다리가 부실한 수원은 좋았던 경기 내용마저 잃을지 모른다. 어느 한 쪽이라도 문제를 풀지 못하면 올 시즌 전통의 명예 회복은 또 멀어진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