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도발이었다.
성남FC의 구단주인 이 시장은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새 외국인선수 피투의 영입관련 기사를 링크하며 '피투가 피 튀길지도···염태영 수원FC 구단주님 혹 쫄리시나요? 성남 첫 원정경기 상대가 수원FC인데 수원에서 만납시다'라는 글을 남겼다. 수원FC 구단주 염태영 수원시장도 지지 않았다. 염 시장은 '예 고대하고 있슴다. 우리는 막내로서 별 부담 없는데, 시즌 시작 직전까지 외국선수 영입해야 할 정도로 걱정되시나요? 축구명가 수원에서 멍석 깔고 기다리겠슴다'고 응수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시장이 5일 내기를 제안했다. 이 시장은 '축구팬들이 수원FC:성남FC 개막전 내기로 '이긴 시청기(시청깃발)를 진 시청에 걸기' 하라는데 어떨까요?'라고 문의했다. 다음 날인 6일 염 시장이 화답했다. 염 시장은 '이재명 시장님 세게 나오시네요^^. 축구 팬들이 원하시고 즐거워하신다면 좋습니다. 단, 처음인데 시청기보다는 구단기로 시작하시죠?'라는 글로 두 시장의 설전을 마무리했다. 수원FC와 성남이 펼치는 '깃발더비'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마침내 '깃발더비'의 문이 열린다. 수원FC와 성남은 19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2016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라운드를 치른다. 감독, 선수 등의 스토리가 이슈가 돼 더비가 된 경우는 있지만 구단주들의 설전으로 더비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흥미로운 광경에 팬들은 '깃발라시코(깃발+엘 클라시코·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간 더비)'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폭발적 관심을 보였다.
사실 SNS로 촉발됐지만 두 시장은 전부터 알게모르게 신경전을 펼쳤다. 묘한 공통점 때문이다. 둘은 인구 100만을 넘는, 기초자치단체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도시들을 책임지고 있다. 소속당도 더불어민주당이다. 또 2년 전 나란히 재선에 성공했다. 수원과 성남이 이웃이다보니 비교가 되는 순간도 많았다. 수원FC가 클래식으로 승격하며 두 시장의 라이벌 의식이 축구로 표출됐다. 수원FC 관계자는 개막 전부터 "수원 더비보다 더 신경쓰이는게 성남과의 경기"라고 털어놨다. 공교롭게도 수원FC의 클래식 승격 후 첫 홈경기 상대는 성남이다.
'깃발 더비'가 다가오며 두 시장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 시장은 16일 시내 한 식당에서 성남FC 선수와 코치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이 자리에서 '깃발더비'에 내놓을 구단기를 꺼내 들며 필승을 다짐했다. 이 시장은 "수원FC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장난이 아니게 됐다"며 "전국적으로 '깃발더비'에 관심이 많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재미있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염 시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직접 개막전 준비상황을 챙기며 "수원FC 구단기는 아직 수원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사령탑들만 골치가 아프게 됐다. 김학범 성남 감독은 개막 전 미디어데이에서 "깃발이 이슈가 됐는데 나름의 분업이라고 생각한다. 리그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부분은 아주 긍정적이지만 선수단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런 경기에서 패한다면 후유증이 상당한게 사실. 조덕제 수원FC 감독도 긴장되는 전남과의 클래식 데뷔전을 앞두고도 여러차례 '깃발더비'를 언급했다. 일단 객관적 전력에서는 성남이 앞서 있다. 성남은 1라운드에서 수원 삼성을 2대0으로 제압하는 등 다크호스다운 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수원FC도 전남과의 클래식 데뷔전(0대0 무)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조 감독은 "우리 보다는 성남 쪽이 부담을 가질 것이다. 신경쓰지 않고 우리만의 경기를 하겠다"고 했다.
과연 누가 서로의 앞마당에 깃발을 꽂을까. 재밌는 판이 초반부터 펼쳐졌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