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장한 청년들이 폭풍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몇번을 다짐했다. 하지만 그리운 고인의 생전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비춰지자 눈물샘은 하염없이 열리고 말았다.
'세계랭킹 1위' 봅슬레이 2인승의 파일럿 원윤종(31·강원도청)은 고인이 된 스승을 위해 편지를 준비했다. 주머니에서 꺼내 첫 줄을 읽는 순간부터 흐느끼기 시작했다. 급하게 브레이크맨 서영우(25·경기도BS경기연맹)에게 건넸다. 옆에 서 있던 이 용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총감독(38)도 눈물을 쏟아냈다. 순식간에 장내는 눈물 바다로 변했다.
행사장에 있던 여성 관객들은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고 맬콤 로이드 봅슬레이대표팀 코치를 향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진한 감동이었다.
지난 1월이었다. 원윤종-서영우 조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2015~2016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5차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으로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정작 기쁨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곁에 없었다. 고 로이드 코치였다. 고 로이드 코치는 4차 대회 합류를 앞두고 1월 4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앓고 있던 암을 끝까지 알리지 않았다.
충격에 휩싸인 선수들이 5차 대회를 준비하던 도중 로이드 코치를 대신해 부인이 대회장을 찾았다. 부인은 원윤종 서영우에게 특별 제작한 메달을 목에 걸어줬다. 앞면에는 ' Every Race I will be with you. Go For Gold(매 경기에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할 것이다. 금메달을 향해 나아가라)', 뒷면에는 'Remember When I Have Taught You. GOMER(내가 전수해준 것을 잊지마라. 곰머(로이드 코치의 애칭))'라고 적혀 있었다. 이 메달을 받은 선수들은 이틀 뒤 사상 첫 금메달로 고 로이드 코치와의 약속을 지켰다.
16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21회 스포츠조선 제정 코카콜라체육대상.
원윤종과 서영우의 목에는 고 로이드 코치 부인에게 받은 세상에서 하나 뿐인 메달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코치에 대한 추모 편지를 꿋꿋하게 낭독했다. "코치님께선 돌아가시기 전에 '언제나 경기에 함께 할테니 목표에 정진하라. 가르쳐 준것들을 잊지 않고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코치님 말씀처럼 비록 이곳에선 함께 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저희 가슴 속에선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2년 뒤 열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서 하늘에서 응원해 주신 코치님 영전에 바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이 감독은 "로이드 코치를 영입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워낙 성격이 고지식하다. 하지만 나는 빠르게 나아질 것을 확신했다. 코치의 우직한 성격을 믿었다"고 밝혔다. 이어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금메달을 딸 때 옆에 있기를 바랐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 영상을 보니 다시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뜨거운 눈물은 최고의 환희로 바뀌었다. 이날 원윤종과 서영우는 코카콜라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쥐었다. 황영조 이봉주 박태환 김연아 이상화 손연재 등 역대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해 최우수선수상 경쟁은 치열했다. 각 종목 세계랭킹 1위들의 전쟁이었다. 봅슬레이팀은 태권도 남자 68㎏급 세계랭킹 1위인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과 여자 양국 세계랭킹 1위 최미선(20·광주여대)과 각축을 벌였다. 결국 썰매 불모지에서 강국으로 탈바꿈시킨 원윤종과 서영우가 상금 1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원윤종은 "0.01초에 갈리는 승부에 매력을 느낀다"며 "올림픽은 메달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도 2년간 잘 준비해서 올림픽 금메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전했다.
한편, 이날 코카콜라체육대상에는 공로상을 수상한 이에리사 국회의원을 비롯해 이창섭 체육진흥공단 이사장,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강영중 국민생화체육회장, 김성일 대한장애인체육회장, 최종삼 태릉선수촌장 등 수많은 VIP가 참석해 행사를 빛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