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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 현장]男대표팀,'데이터 탁구'로 포르투갈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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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2시(한국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말라와티 샤알람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세계탁구선수권, 북한과 포르투갈의 8강행 티켓 전쟁이 한창이었다. 북한-포르투갈전 승자가 4일 한국의 8강전 상대가 되는 상황, 태극마크를 단 스태프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목격됐다. 국가대표 출신 이태조 대한탁구협회 전력분석관과 한국스포츠개발원 황승현 박사팀이었다. 이 전력분석관은 1989년 도르트문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은메달,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다. 황 박사는 한국스포츠개발원 탁구 담당 연구원이다. 이날 아침 안재형 남자대표팀 감독은 전력분석팀에 북한-포르투갈전 실시간 영상을 의뢰했다.

탁구 영상분석팀에 대한 논의는 지난해 초부터 시작됐다.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의 지시가 있었다. 조 회장은 스포츠 과학 및 정확한 데이터를 탁구 경기 및 기술 분석에 적극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국가대표팀에 '주먹구구식' 예측이 아닌 정확한 데이터 분석에 의한 상대 예측 및 전력분석을 요구했다. 영상분석에 대한 전문 지식을 위해 필요하다면 탁구인들을 미국 남가주대(USC)에 보내 스포츠 영상 분석기술을 배우고 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대한탁구협회는 한국스포츠개발원 탁구 담당인 황 박사팀과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고, 지난해 8월 이태조 전력분석관이 가세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스포츠개발원에 동하계 종목 지원을 위한 예산을 추가 편성했다. 리우올림픽을 위해 하계종목에 7억3000만원, 평창올림픽을 위해 동계종목에 6억5000만원을 지원했다. 영상지원센터에 2억원을 배정했다. 스포츠 과학을 통해 '탁구명가'의 부활을 꿈꾸는 협회와 스포츠개발원 과학자들의 마음이 통했다.

스포츠 현장의 선수와 학자, 테크니션의 본격적인 협업이 시작됐다. 대한탁구협회는 황 박사팀과 함께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처음으로 실시간 현장 영상분석 시스템을 구축했다. 8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라이벌 국가 선수들의 최근 기초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할 기회다. 황 박사는 석사급 연구원 2명을 대동하고 세계선수권 기간 내내 경기장에 상주했다. 영상 분석, 편집 프로그램은 일본, 싱가포르 등 다수 국가들이 다양한 종목에서 사용하는 '다트피쉬'를 채택했다. 현장에서 비디오카메라로 탁구 영상을 찍는 한편, 매 득점시 서브, 3구, 5구, 승부처에서의 결정구의 구질과 내용을 실시간으로 입력한다. 탁구 영상과 입력된 데이터를 붙여보며 2차 분석에 들어간다. 서브 패턴과 결정구의 방향, 코스 공략에 대한 보다 세밀한 분석에 들어간다. 몇 개의 서브포인트를 기록했고, 몇구에서 승부했으며, 어떤 방향의 어떤 공격이 주득점원이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나온다. 선수나 감독의 요구에 따라 서브, 결정구만 따로 분석하는 식의 '맞춤형' 편집도 가능하다. 선수의 동작, 기술 입력과정, 정량적 분석에 있어 국가대표 출신 이 전력분석관의 직관과 '매의 눈'은 절대적이다. 현장에서 3시간 가까이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실시간 영상 분석 자료는 PDF 형식으로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전해진다. 이날 찍은 영상은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 나설 주세혁, 이상수, 정영식 등 남자대표팀의 스마트폰에 전송된다.

이 전력분석관은 "실시간 분석은 처음 시도해보는 만큼, 힘든 점도 많고, 탁구종목의 특성상 변수도 많지만,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황 박사는 "이태조 선생님은 선수 출신으로서 입력과 해석을 담당하시고, 테크니션인 우리는 장비, 프로그램, 기술을 지원한다. 스포츠 현장과 과학의 협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형"이라고 강조했다. "탁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변수가 많은 만큼 해석의 영역이 가장 중요하다. 디테일도 끝이 없고, 영상 편집의 레벨도 다양하다. 좀더 명확한 기준점을 찾고, 분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탁구 현장과 계속 협의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맞닥뜨린 현장의 어려움도 이야기했다. 황 박사는 "단순한 영상 분석이 아닌 실시간 분석은 쉽지 않다. 3시간 경기를 완벽하게 분석하기 위해서 2~3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다. 새벽 2~3시까지 일한다. 인력과 품이 많이 든다"고 했다. "이제 첫 걸음 단계다. 탁구 종목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일인 만큼 첫 단추를 잘 꿰고 싶다. 분석 영상과 데이터가 선수들의 실제 경기력과 연결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고, 노하우가 쌓이면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력분석관은 북한-포르투갈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빛의 속도'로 가방을 싸더니 계단을 달려내려갔다. "남자대표팀 경기가 내일이니까 무조건 오늘 밤 안에 영상을 모두 정리해 넘겨야 해요. 호텔에 가서 나머지 작업을 끝내려면 시간이 없어요." 쿠알라룸푸르=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