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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웅의 뼈아픈 반성, 그리고 새로운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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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과 준비 부족,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동부는 지난 1일 원주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에서 오리온에 세 번째로 패해 시즌을 끝냈다. 김영만 감독과 선수들은 모두 진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래도 두경민과 허 웅, 두 명의 젊은 가드들이 이번 시즌 앞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줘 그나마 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이게 매우 긍정적인 소득이다. 경험이 쌓였으니 다음 시즌에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패배의 상실감 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 셈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는 감독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정작 선수 자신은 마냥 낙관하고 있지 않다. 대신 이번 시즌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다. 바로 김 감독이 '희망 요소'로 손꼽은 허 웅(23)이다. 허 웅은 오리온에 패한 뒤 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6강 패배가)다 내 잘못인 것만 같다. 김주성 선배님은 몸이 아프면서도 계속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면서 열심히 뛰어줬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다. 그게 너무 아쉽고 죄송스럽다.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경기가 끝난 뒤 동부 전 선수단은 늦은 저녁을 먹으며 조촐한 회식을 했다.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자리. 그간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고, 패배의 상처를 함께 보듬어줬다. 동부의 상징인 김주성은 모든 후배들을 아낌없이 격려했다. 그 사이에서 허 웅은 자신을 질책하고, 또 질책했다.

허 웅은 왜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친 걸까. 감독과 선배의 격려와 칭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건 허 웅이 이번 패배를 계기로 자기 스스로에게 한층 더 엄격하고 냉정해졌기 때문이다. 동부는 3연패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허 웅은 오리온 외국인 가드 조 잭슨에게 철저히 당하고 말았다. 이 충격은 허 웅에게 그간의 안일함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든 계기였다.

허 웅은 "제대로 준비를 못하면 이렇게 진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어요"라며 "사실 그 동안에는 많이 자만했어요. 전반기에는 열심히 준비한만큼 농구가 됐는데, 올스타 팬투표에서 1위를 하면서 '내가 최고다'라는 바보같은 자만심에 빠졌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놀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어요.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행동이었는지 이제서야 알았네요"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 웅은 분명 프로 2년차인 2015~2016 시즌에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루키 시즌에 41경기에서 평균 16분42초만 뛰며 4.8득점 1.5 어시스트에 그쳤지만, 이번 시즌에는 전경기(54경기)에 출전해 평균 31분54초를 뛰며 평균 12.07점에 2.9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엄청난 성장이다.

그러나 허 웅 본인의 평가는 '실패'로 귀결된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던 기회를 자만심으로 흘려보낸 걸 가슴 아프게 후회하고 있었다. 허 웅은 "이제 어떤 마음으로 준비를 해야하고, 다음 시즌을 치러야할 지가 명확해졌어요. 다시는 이런 후회를 반복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며 "또 확실한 목표도 세워놨어요. 이제 은퇴가 가까워진 김주성 선배님을 반드시 내 손으로 영광의 자리에 올려드리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우승의 주역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인 이유는 반성의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허 웅은 6강 플레이오프의 처참한 실패를 통해 수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허 웅은 발전과 진화를 약속했다. 그의 눈빛에 이제 독기가 묻어나온다. 그 눈빛은 '허 웅 아버지' 허 재 전 KCC 감독을 연상케 했다.

원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