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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주' 박정민, 과정만큼 결과도 아름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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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배우 박정민(29)과 인터뷰를 가진 1시간 남짓, 영화 '동주'의 흑백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송몽규를 직접 마주하고 있는 듯한 묘한 감흥이 여러 번 찾아왔다. 엄혹한 시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송몽규처럼, 박정민도 송몽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기 때문이리라.

'동주'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한 청년의 생애가 박정민에 의해 온전하게 복원돼 현재로 생환했다. 시인 윤동주와 석 달 차이로 태어난 사촌이자 평생을 함께한 벗 송몽규. 이준익 감독은 "송몽규를 보여주기 위해 윤동주라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했다. 영화는 윤동주의 시선에서 송몽규를 비춘다. 19세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사(文士), 독립운동에 투신한 열사(烈士), 과정은 아름다웠으나 결실을 맺지 못해 기억되지 못한 비운의 청춘. 윤동주에게 송몽규는 부끄러움을 안기는 또 다른 자아였다. 그래서 '동주'의 다른 이름은 '몽규'다. 그리고 우리는 '동주'를 통해 박정민이란 배우를 얻었다. 관객들이 가슴 뛰는 뜨거움과 사무치는 서러움을 안고 극장문을 나선다면, 그건 전적으로 박정민의 공이다.

"송몽규 선생님을 더 잘 소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이 큽니다. 당시 그분이 얼마나 한스럽고 억울했을까 생각하면, 그동안 그 이름도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져요." 박정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호평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시대 현실에 온몸으로 맞선 송몽규라는 그림자가 아직 그에게 크게 드리워져 있었다. "송몽규 선생님의 삶을 훼손해서는 안 되니까 그분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었어요. 물론 흉내를 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관객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었죠. 제 능력에 대한 의심도 있었고요."

송몽규라는 난제를 만난 박정민은 "송몽규가 '왜' 싸워야만 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그야말로 책과의 씨름이었다. '윤동주 평전'에 단편적으로 실린 송몽규의 행적을 통해 진정성을 느껴보려 했고, 그의 사상적 변화의 이유를 고민했다. 시대 배경인 1, 2차 세계대전과 이광수, 최남선, 윤치호 같은 당대 인물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송몽규가 일본 교토제대 유학 시절 학생들을 규합해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설명하며 투쟁을 결의하던 장면 하나를 두고도, 대사에 나온 모든 사건을 알아야만 했다. "대사만 멋있게 읊어서 연기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싸웠는지 체득해야만 했어요."

박정민은 '윤동주 평전'에 실린 한 구절을 소개했다. '송몽규가 일본 경찰에 잡혀 있다 풀려나온 후 가슴이 자꾸 안으로 구부러든다며 가슴을 펴기 위해 베개를 베지 않고 잤다'는 진술이다. "심장을 후벼파는 것만 같은" 송몽규의 삶은 박정민의 가치관도 변화시켰다. "정의에 대한 나름의 책임감을 갖게 됐고, 지금 시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는 고백이다.

영화의 절정을 이루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취조 장면은 왜 송몽규 역에 박정민이어야 했는지를 증명한다. 축적된 감정이 뜨겁게 분출한다. 촬영을 마치고도 한참을 울었다. 그 옆에서 이준익 감독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 장면을 찍던 중 순간적으로 송몽규 선생님의 쓸쓸한 묘소가 떠올랐어요. 그런 묘를 가질 분이 아닌데…. 그분의 억울함과 그에 대한 나의 억울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죠. 송몽규 선생님이 하늘에서 저를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촬영 전에 송몽규 선생님 묘소를 찾아갔을 때 약속드렸어요. 제가 잘해서 꼭 선생님께 도움을 드리겠다고요. 어쩌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감히 드린 것일 수도 있어요. 로버트 드 니로가 온다 해도 그분을 100프로 구현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 능력치 안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하늘에서 노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동주' DVD가 나오면 다시 찾아뵐 생각입니다."

박정민은 "고작 연기 한번 잘해보겠다고 북간도까지 찾아간 게 너무 부끄러웠다"고 했지만, 그의 남다른 마음가짐과 엄청난 헌신은 그 자체로 감동을 안긴다. 노력의 질과 양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의 연기가 울림이 컸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사실 저는 많이 느려요.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이해하는 건 늦는 편이죠. 그래서 저는 자신을 혹독하게 담금질해야만 하는 사람이에요.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남들 하는 만큼 따라갈 수 있어요."

항상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는 박정민은 어쩌면 윤동주와도 닮은 듯하다. 2011년 영화 '파수꾼'으로 데뷔한 후 '들개', '전설의 주먹', '신촌좀비만화' 등 여러 작품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 발견은 조금 늦었다. 윤동주가 송몽규를 보며 그러했듯, 박정민도 앞서 가는 동료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꼈고 한때 연기를 포기할까 고민도 했다. '동주'는 그런 박정민에게 깨달음을 안겼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이준익 감독님이 '동주'는 '과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라고 하셨어요. 그때 이상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책임감, 반성 다 아니고, 부끄러움이었어요. 이 영화를 기회로 생각했던 한 무명배우와 두 인물을 다룬 감독님의 의도가 충돌했던 거죠. 내가 할 일은 관객에게 송몽규란 분이 있었다고 얘기하는 것인데, 그걸 잊고 있었던 겁니다. 가슴에서 격랑이 일었어요. 그 이후로 태도가 바뀌었어요. 부끄러움을 상쇄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동주' 이후 연기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는 얘기에 그는 "기대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송몽규와 또 다른 잊혀진 이름들을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정민은 2년 넘게 한 월간지에 '언희(言喜)'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있다. 그의 재기 넘치는 글에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바람이 곳곳에 담겨 있다. 3월호엔 '동주'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글로 만난 박정민이란 배우는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연기에 대한 신념과 소신도 전해진다. 박정민은 "조금 늦더라도 자신을 배반하지 않고 존경하는 선배들의 발자국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한다. '동주'는 그의 더디지만 굳건한 걸음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끝내 과정만큼 결과도 아름다울 것이라 기대한다.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