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원더비에서 염기훈(33·수원)을 막을 히든카드를 준비했지."
조덕제 수원FC 감독은 K리그 클래식 승격을 확정짓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그 히든카드는 곧 공개됐다. 권혁진(28·수원FC)이었다. 의외였다. 권혁진은 무명이다. 2011년 인천에서 데뷔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는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다. 권혁진의 집안사를 들어보면 조 감독이 지은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권혁진과 염기훈은 '동서 지간'이다.
권혁진과 염기훈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산경찰축구단에서 군복무를 하던 둘은 한방을 쓰며 친해졌다. 당시 염기훈은 면회를 온 아내 김정민씨(32)를 권혁진과 함께 만났는데, 그때 권혁진의 됨됨이를 좋게 본 김정민씨가 친동생 김혜민씨(28)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권혁진은 '고참 형수'가 해주는 소개팅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염기훈의 계속된 권유에 자리에 나섰고, 천생연분을 만났다. "첫 눈에 마음에 들었다"는 두 커플은 2014년 12월 웨딩마치를 울렸다.
권혁진에게 염기훈은 '형님' 이상이다. 힘들때 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배이자 언제나 응원해주는 가족이다. 수원FC로 이적이 결정됐을때 누구보다 기뻐해 준 것도 염기훈이었다. 사실 권혁진은 전역 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많은 기대 속에 인천에 복귀했지만 단 6경기 출전에 그쳤다. 권혁진은 2015년 여름 내셔널리그 목포시청으로 임대를 결심했다. 아내도 함께 목포행을 결정했다. '새신랑' 권혁진은 내셔널리그에서 7골-1도움을 올리며 목포시청을 창단 후 첫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이때 염기훈의 도움이 컸다. 권혁진은 "형님께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플레이에 대한 조언 뿐만 아니라 맛있는 음식도 사주시면서 사기를 불어 넣어주셨다"고 했다.
다시금 밟게된 클래식 무대. 공교롭게도 권혁진의 새 둥지는 '형님' 염기훈이 주장으로 있는 수원 삼성의 더비 라이벌 수원FC였다. 권혁진은 "승격 후 바로 제안을 받았다. 수원FC는 경찰축구단에서 뛰면서 상대하기 힘들었던 팀이었다. 나는 저돌적인 스타일이었다. 공격축구를 강조하는 수원FC와 잘 맞는다. 좋은 기회가 생긴 것 같아서 너무 기뻤다"며 웃었다. 권혁진이 수원FC에 둥지를 틀며 이제 가족들의 대화주제는 자연스럽게 수원더비가 됐다. 김정민씨와 김혜민씨는 "우리 남편이 이길 것"이라고 으르렁 댄다. 이를 중재하는 주인공은 국가대표까지 지낸 권혁진과 염기훈의 '장인' 김성기 강경상고 감독(55)이다. 권혁진은 "아버님이 서로 부상없이 좋은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신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수원더비는 권혁진-염기훈 가족의 축제다. 권혁진과 염기훈은 새해 함께 광교산을 올라 새 시즌의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다. 권혁진은 "팀원들끼리 수원더비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눈다. 역사적인 일인만큼 기대도 크다.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남은 기간 준비를 잘해야겠다"고 했다. 권혁진은 오른쪽 윙백으로 왼쪽 윙어인 염기훈과 정확히 맞부딪힌다. '만약 형님과 대결을 한다면'이라고 물었다. "팀이 우선이고 승리가 먼저다. 만약 맨투맨을 하게된다면 거칠게 하고 싶다. 워낙 형님이 킥이 좋은만큼 크로스를 못하도록 과감하게 막겠다. 형님 각오하세요!"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