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판타지를 실화로 둔갑시키는 '석테일'의 마법이 안방극장에 뜨거운 '시그널(신호)'을 보내고 있다.
과거로부터 걸려온 간절한 무전 신호가 현재의 형사들에게 닿으면서 오래된 미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고 과거의 형사와 형제의 형사가 손잡고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그린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김은희 극본, 김원석 연출).
2000년의 이재한(조진웅)이 2015년의 박해영(이제훈)에게 신호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타임슬립이 펼쳐지는 '시그널'은 1989년의 이재한이 다시 2015년 박해영과 접속하면서 무한루프(프로그램이 어떤 처리 루틴을 반복 실행하여 그 부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발생, 사건이 해결될 때마다 미래가 바뀐다. 범인을 찾아 끝나는 평범한 추리 수사물이 아닌, 범인을 뛰어넘어 미래의 결과까지 바꾸는 신개념 추리 수사물이 탄생한 것.
여기에 '명품 배우'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경이로운 열연을 펼치는 김혜수, 조진웅과 비주얼이 다한 이제훈, 그리고 장현성, 정해균, 김원해, 이유준 등 극의 무게를 책임지는 신스틸러 덕분에 연기 볼맛도 상당한 '시그널'이다.
배우들의 호연도 호연이지만 무엇보다 시청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대목은 김원석 감독의 '미친 연출'이다. 무전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꿈 같은 이야기,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판타지 설정이지만 이러한 판타지를 연출의 힘으로 보완, 리얼한 현실로 풀어냈다.
특히 전작 '미생'에서도 활약했던 김원석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력이 이번 '시그널'에서도 발휘,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일단 시청자가 범인을 유추할 수 있도록 곳곳에 '떡밥'을 숨겨 놔 '찾는 재미'를 선사했다.
지난 1, 2회를 통해 방송된 김윤정 유괴사건 편에서는 이재환이 용의자를 잡기 위해 주변 검문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주민등록증을 건네던 손을 클로즈업, 힌트를 남겼다. 또한 김윤정이 유괴될 당시 내렸던 비는 범인을 검거할 때도 내려 과거와 현재를 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3, 4회를 달궜던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 편에서는 여러 용의자의 몽타주를 보여주는 과거 신, 진짜 범인의 몽타주를 껴 넣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자칫 복잡하고 어려운 시간 전개를 박진감 넘치는 편집으로 리스크를 줄였고, 경찰서라는 좁고 폐쇄된 공간을 역동적인 배우들의 동선으로 풀어낸 것 또한 김원석 감독의 능력 중 하나다. 과거와 현재 장면을 화면 비율과 색감으로 차이를 둔 것 또한 김원석 감독만의 '센스'가 발휘된 대목이다.
실제로 김원석 감독은 사실적인 '시그널'을 만들기 위해 프로파일러를 동원,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작은 먼지 한 톨, 배우들의 동작 하나까지도 디테일하게 다듬고 손 본 그는 강렬하고 밀도 높은 구성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자세히 보고, 여러 번 곱씹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시그널'. 팥으로 메주를 쑬 줄 아는 김원석 감독을 믿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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