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와의 4강전 후반 43분, 신태용호의 '오른쪽 윙백' 이슬찬(23·전남 드래곤즈)은 온몸의 기를 집중해 문전의 권창훈을 향해 킬패스를 건넸다. 권창훈의 발밑에 딱 갖다준 완벽한 어시스트였다. 짜릿한 극장골이 터졌다. 리우행을 확정짓는 축포였다. 이슬찬의 이번 대회 2호 도움이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공식 사이트에는 카타르의 에 이어 도움순위 2위로 기록됐다. 도움 2개를 기록한 류승우와 동률을 이뤘다.
이슬찬은 '전남 유스' 출신 오른쪽 수비수다. 류승우, 이창민, 권창훈처럼 올림픽대표팀의 '터줏대감'은 아니지만, 특유의 성실성과 친화력, 희생과 헌신으로 '신태용호'에 폭풍적응했다. 8강 진출이 확정된 이라크전을 제외한 전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예멘전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권창훈의 해트트릭을 도왔고, 절체절명의 카타르전에서 1-1로 팽팽하던 후반 종료 직전 천금의 땅볼패스로 권창훈의 결승골을 도왔다.
이슬찬은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선택이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튀니지와의 2차례 평가전에서 눈도장을 받았다. 1m70의 작은 키지만 찰거머리처럼 질긴 수비력과 승부욕, 영리한 축구지능과 전술 이해력을 갖췄다. 이슬찬은 지난해 6월 2차례 평가전에서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호주 평가전, 중국 4개국 친선대회까지 7경기에서 줄곧 선발로 나섰다. 최종 예선전을 치르는 내내 성장을 거듭했다.
이슬찬은 '축구 미생'들의 희망이 되기에 충분한 선수다. 전남 유스 출신으로 2012년 프로에 입성했지만 2012시즌 4경기, 2013시즌 3경기, 2014시즌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선발은 전무했다. 프로 입성 이후 별다른 부상이 없었음에도 3년을 벤치에서 보냈다. 2014년 말 전남과의 계약이 만료된 그의 축구 운명은 한때 기로에 놓였다. 첫 전남 지휘봉을 잡은 '레전드 스승' 노상래 전남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1년 재계약이 성사됐다. 전남에서 나고 자란 이슬찬의 꿈은 광양전용구장의 팬들 앞에서 선발로 뛰어보는 것이었다. 일기장에 새시즌 목표로 "홈에서 선발로 1번 이상 뛰는 것"이라고 썼다. 지난해 4월 전북전은 그의 첫 홈 선발전이었다. 현영민이 경고누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준비된 이슬찬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에닝요,한교원을 꽁꽁 묶어내며 인정받았다. 이후 노 감독은 전력에 구멍이 날 때마다 '멀티플레이어' 이슬찬을 좌우, 위아래에 믿고 썼고, 그때마다 이슬찬은 이를 악물고 미션을 완수했다. 지난 시즌 올림픽대표팀을 오가며 K리그에서 무려 22경기를 뛰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이슬찬에게 시즌 후 타구단의 러브콜도 있었다. 연봉 3500만원의 23세 선수에겐 '인생역전'의 기회였다. 억대 연봉의 솔깃한 제안도 있았다. 그러나 이슬찬은 흔들리지 않았다. '돈보다 의리'를 택했다. 어려운 시절, 자신을 믿어주고 키워준 노상래 감독과 팬들을 향한 보은이었다.
이슬찬은 K리그 클래식에서 공격포인트가 없다. 올림픽대표팀의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서만 무려 2도움을 기록했다. 득점선두를 노리는 권창훈의 4골 가운데 2골이 이슬찬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전남에서 이슬찬은 팀을 위한 희생, 수비적인 역할에 집중했다. '킥이 뛰어난 선배' 현영민, 최효진이 더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노 감독은 "어떤 임무를 맡겨놓든 틀림없이 똑부러지게 해내는 똘망한 선수"라고 했었다. 전남 유스 시절 그를 지도한 김인완 20세 이하 대표팀 수석코치 역시 "슬찬이는 감독이면 누구나 좋아할 인성을 가졌다. 귀가 열려 있다. '저 선수를 잡으라'고 시키면 지구끝까지 가서라도 잡는 근성이 있다"고 했다.
공격적인 오버래핑을 독려하는 '신태용호'에서 이슬찬은 신 감독의 취향에 맞게 변신했다. "실수를 하더라도 도전하라"는 신 감독의 독려에 자신감이 올라왔다. 매경기 발전하고 성장했다. 거침없는 중거리 슈팅을 날렸고, 측면에서 1m90의 카타르 수비수와 진검승부했으며, 리우행 킬패스를 찔러넣었다. 전남이 키운 이슬찬은 올림픽대표팀의 '언성히어로'다. 알토란 같은 2도움은 포기를 모르는 투지와 노력의 열매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