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名門)'이라는 칭호는 원래 누대에 걸쳐 명성을 쌓아온 씨족집단을 뜻하는 용어였다. 이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낸 학교를 수식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됐는데,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프로구단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한신 타이거즈 등 오랜 시간 동안 성적과 흥행 및 고유의 팀 문화를 만들어낸 구단을 지칭할 때 '명문'이라는 단어를 쓴다.
메이저리그에는 이런 식의 수식어는 없다. 리그 영향력이나 구단의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빅마켓'과 '스몰마켓' 정도를 구분하긴 한다. 다만 뉴욕 양키스나 LA다저스처럼 오랜 시간 수많은 슈퍼스타를 배출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구단들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핀스트라이프'나 '다저블루'는 그 자체로 고유명사이면서도 각각 양키스와 다저스 구단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단순히 하나의 프로야구단이 아닌 미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해 온 결과다.
이처럼 해외 유명 구단의 사례를 바탕으로 진정한 '명문'의 조건을 유추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긴 시간 동안 리그 전체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뚜렷한 팀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당연히 성적도 기본 요건에 들어간다. 리그 최정상에 올라 다른 구단들의 분발을 이끌어내면서 팀은 물론 리그 전체 흥행의 첨병에 서야 한다. 장기적인 비전 등 구단운영 시스템을 타구단이 벤치마킹하려는 롤모델도 돼야 한다.
일본 내에서 '교징(거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9년 연속 리그우승을 차지한 이른바 'V9 시대'를 통해 절대강자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후 부침을 겪으면서도 '최강'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양키스와 다저스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며 '최강의 시대'를 누렸고 고유의 팀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야구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다.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고, 그들의 휴먼스토리와 팀의 역사가 쌓여왔다. 고유의 팬덤이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건 당연하다. 이같은 구단의 이미지와 고유의 팬덤 문화는 미국과 일본의 소설, 영화, 음악, 광고, 드라마 등에서 재가공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문화를 만들어내왔다.
또 이 구단들은 이렇게 쌓아온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 구단 내외부에 적용했다. 철저한 자기검열을 통해 '명문'의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긴 수염과 장발을 허용하지 않고, 원정 이동 때 정장 슈트 착용을 의무화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미우리 구단이 지난해말 야구관련 불법 도박 관련자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요미우리는 불법도박을 시인한 후쿠다 사토시와 가사하라 쇼키, 마쓰모토 유야를 전격 방출하고 하라사와 아쓰시 대표까지 사퇴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며 '명문'의 이미지를 지켰다.
35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사실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 같은 개념의 '명문 구단'을 찾기 쉽지 않다. 긴 역사를 통해 팀 고유의 문화와 이미지 및 팬덤을 구축하고, 이것이 리그 및 사회적으로도 일정한 영향력을 미친 구단. 그리고 이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엄격한 자기 반성과 통제를 하는 구단. 진정한 '명문구단'의 조건에 부합하는 구단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각 구단들은 이런 조건들에 부합해 '명문구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과연 어떤 구단이 KBO리그의 진정한 '명문구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될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