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스템 야구란 육성이 강한 야구다."
SK 와이번스 김용희 감독이 지난 2014년 10월 취임식에서 선언한 팀운영 철학이다. 1994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처음 감독직을 수행할 때부터 김 감독은 새로운 체계와 시스템 도입을 꿈꿔 온 지도자다. 롯데에 이어 2000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직을 맡았을 때도 자신의 야구를 펼쳐보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돌고돌아 어렵게 SK 사령탑에 올랐다. 김 감독은 "롯데, 삼성 감독 시절에는 전체적인 야구 환경이 시스템 야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감독의 시스템 야구란 이렇다. 프로 구단의 공통된 목표는 우승이지만, 이러한 단기적 목표보다는 장기적으로 강한 팀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군에서 뛰는 선수들은 절대 무리시키지 않고 긴 시간 꾸준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며, 밑에서는 선진화된 육성 시스템을 통해 미래의 주역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 게임으로 들여다보면, 승리를 위한 무리수는 없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미리 그려놓은 그림에 따라 선수들을 기용한다. '이 팀을 상대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이 선수가 나간다'는 공식이 정립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감독의 시스템 야구는 지난해 SK에서 자리를 잡았을까. 일단 성공도, 실패도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단, SK는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해 가을야구라는 단기 목표를 이뤘다. 당시 김 감독은 부상 후유증이 남아있던 불펜의 핵심 박희수와 박정배에 대해 "5위 싸움,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 절대 무리시키지 않을 것이다. 딱 던질 수 있는 양만큼만 던지게 하는게 내 시스템 야구"라고 설명하고 이를 지켰다. 그리고 시즌 내내 무리하지 않았던 나머지 불펜 투수들의 선전으로 치열했던 5위 경쟁을 이겨냈다.
하지만 SK가 5위에 오르기까지 김 감독의 시스템 야구가 확실한 효력을 발휘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SK는 사실 지난해 7월 정의윤을 영입하면서 타선이 살아나 가을야구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 정의윤 트레이드는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간판타자인 최 정과 김강민이 FA 계약 첫 해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진을 보이는 바람에 시스템 야구의 개념을 무색케했다. '김용희 감독 만의 특별한 야구가 구현됐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시즌이었다. 하나의 팀으로 끈끈하게 굴러갔던 그 시절의 SK는 아니었다.
지난해를 시행착오의 시즌으로 본다면 2016년은 김 감독의 시스템 야구를 평가할 수 있는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불펜진의 핵이었던 정우람과 윤길현이 팀을 떠났다. 베테랑 포수 정상호도 없다. 하지만 김 감독의 철학대로라면 이러한 공백도 금세 메워질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 준비는 연속성을 띠어야 하며 전지훈련 때부터 확고하게 틀을 다져놓아야 한다. 시스템 야구가 정착하려면 선수 개인 역량 못지 않게 감독의 리더십과 프런트의 의사결정 능력도 중요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