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에게 더욱 매서운 겨울 바람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 실업률은 8.1%였다. 지난 2월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최고였던 11.1%보다는 하락했다. 하지만 실제 청년들이 체감하는 실업률은 최대 20%에 육박한다. 연애, 출산, 결혼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 같은 신조어가 더 이상 낮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꿈도 희망도 없는 오늘날의 청년 문제는 이제 그들 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가 떠안고 있는 짐이다.
지난 1년 5개월 간 '자연인' 신분이었던 홍명보 항저우 감독에게 '칼바람'은 낮설지 않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마친 뒤 찾아온 광풍은 그의 축구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2009년 이집트청소년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 신화를 썼던 '지도자 홍명보'의 이름은 사라졌다. 현역, 지도자로 평생을 바쳤던 그에게도 꿈,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자연인으로 마주한 세상과의 시간에서 답을 찾았다. 내로라 하는 스타, 팬과 함께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연 '주식회사 건영과 함께하는 2015년 셰어 더 드림(Share the dream) 풋볼매치'는 웃음을 잃은 우리 시대 청춘, 병마와 싸우는 소아암 환우들에게 바치는 홍 감독의 헌사였다.
사실 준비가 순탄치는 않았다. 불경기 탓에 스폰서십에 난색을 표하는 기업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가운 세상의 눈길을 확인했을 때 홍 감독 자신조차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걸어온 축구인생과 동행한 제자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소속 선수들은 "우리도 참가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연 자선경기는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그린타운 사령탑으로 '지도자 2막'을 준비하는 홍 감독 자신에게도 좌절의 순간을 딛는 '힐링타임'이었다. 주최자 신분으로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후배들의 경기를 바라보는 홍 감독의 얼굴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 뛰지 않았으나 벤치에서 동료들과 호흡했더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은 "선수 누군가가 이런 행사를 주도하기는 어렵다. 홍명보 이사장이 길을 열었다"고 공을 돌렸다. '막내' 이승우(FC바르셀로나 유스) 역시 "언제든 뛸 준비가 되어 있다"며 자선경기에 임한 소감을 밝혔다. 홍 감독은 경기 뒤 "자선경기가 어느덧 13회째를 맞았다.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청춘들을 위해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앞으로 (자선경기를) 얼마나 계속할 지 예측 못하지만 지금껏 해온 모든 일 못지않게 소중한 일이다.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이다." 좌절을 딛고 다시 날개를 편 홍 감독이 자선경기를 통해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