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여기 있는 여러분과 똑같은 학생선수였습니다." "후배 여러분, 항상 응원합니다."
23일 오후 1시30분,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스포츠 백년지대계-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 스포츠 콘서트(문화체육관광부-국민체육진흥공단 후원)가 열렸다.
김 종 문화체육부 제2차관,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안양옥 한국교원총연합회장 등 내빈들이 함께 한 가운데 200여 명의 학생선수, 체육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체육인재육성재단과 공동기획한 이번 행사는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크리스마스 시즌, 공부하는 선수들을 위해 '특별한' 스포츠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참가 열기도 뜨거웠다. 전주 지역 '유도 명문' 조촌초, 전북중, 우석고 유도부 학생선수들이 대형버스 2대에 나눠타고 상경했다. 오전수업을 마치자마자 달려온 공릉중학교 축구부 35명의 학생도 '공부 선배'들의 이야기에 눈을 총총 빛냈다. 가락고 여자축구 스포츠클럽 '발모아' 여학생과 20여 명의 장애인선수들도 함께했다. 강원FC 수비수 이 완 등 현역 축구선수들도 자리했다.
운동하는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 공부의 길을 먼저 간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공부 부담을 짐 지우지 않았다. 운동과 공부, 힘들지만 가야만 하는 길, 어려워도 해야만 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함께, 잘, 걸어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조언했다. 자신들의 중고등학교 시절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일들을 최선을 다해 전해주고자 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직전, 이단평행봉에서 떨어지며, 선수의 길을 놓아야 했던 김소영 한국척수협회센터장이 가장 먼저 연단에 올랐다. '고래의 꿈, 장애를 이긴 나눔 공부'를 이야기했다. 메시지는 명징했다. "우리에게 운동은 첫사랑이다. 나도 체조를 못하게 됐을 때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첫사랑을 잃는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중1 때 부상으로 쉰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체조를 그만두는 게 어떻냐고 했다. 나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늦지 않았다. 운동 외에 다른 것도 얼마든지 시작하고 도전할 수 있는 나이다. 세상은 넓고 운동을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다"며 후배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당장 공부 병행이 어렵다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훈련일지와 독서를 제안했다. 목적이 또렷한 목표도 강조했다. 단지 메달이 아닌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목적'을 강조했다.
시각장애인 아이돌 그룹 '더블라인드'의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직후, K리그 수원 삼성 출신 이상하 체육인재육성재단 국제인재부 주무가 무대에 올랐다. 2012년 선수 은퇴 후 독한 공부로 토익 945점을 받고,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일하게 된 그의 스토리는 단연 화제였다. 이 주무는 축구를 그만둔 이후, 자신의 공부노트, 공부법, 교재, 공부시간표 등 후배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특별한 영어공부법'을 세세하게 공개했다.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학생선수였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했다"고 털어놨다. "공부는 학생선수의 특권이다. 일반 학생들은 축구부를 할 수 없다. 학교를 대표해서 운동하는 것은 명예다. 여기에 공부까지 마음 먹고 하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미래는 그들이 겪는 고난이 아니라 고난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는 미셸 오바마 미국 영부인의 명언을 떠올렸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힘들지만, 힘든 것이 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힘든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내 미래를 결정한다"고 했다. 공부하는 후배들을 따뜻하게 보듬었다. "학생선수로 사는 게 정말 힘든 것을 알고 있다. 항상 응원한다.
마지막 Q&A 순서에선 명지대 대학원에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여자축구 국가대표 전가을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공부의 길을 이끈 멘토가 있나요" "프로유스팀에 가야만 성공하나요?"는 중고등학생들의 질문부터, "남자친구가 운동만 하고 공부는 게을리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는 여대생의 발랄한 질문까지 공부하는 전직 체조선수, 축구선수, 현역 여자축구 에이스를 향한 질문이 빗발쳤다. 공부선배들은 진지하고 따뜻하게 후배들의 질문에 답하고, 소통하고, 공감했다.
스포츠 콘서트 직후 공릉중, 가락고, 우석고 등 학생선수들과 '공부 선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향해 '하트'를 그려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전가을과 이상하 주무도 '선배' 김소영 센터장을 두 팔로 감싸듯 하트를 완성했다. '첫사랑' 체조를 잃은 후 절망속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김 센터장의 이날 마지막 코멘트는 시인 정호승의 '고래를 위하여'였다. "푸른바다에는 고래가 있어야지, 고래 한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2015년, 치열하게 달려온 공부하는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 사이로 씩씩한 '고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