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닷컴 김영록 기자] 주제 무리뉴(전 첼시) 감독이 경질된 가운데, 위기에 빠진 다른 유럽축구 감독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루이스 판 할(맨유), 라파엘 베니테스(레알 마드리드) 감독에 대한 구단의 신뢰는 아직 견고해보인다. 반면 루디 가르시아(AS로마) 감독은 백척간두에 서 있다.
무리뉴와 판 할, 베니테스, 가르시아 감독은 각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팀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올시즌 리그에서의 부진과 더불어 컵대회 탈락(레알 마드리드 실격), 챔피언스리그 부진(맨유 탈락)의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팀내 레전드들과 현지 언론, 팬들의 주관적인 평가도 날씨만큼이나 차갑다.
1. '벼랑 끝' 가르시아 감독(AS 로마)
이들 중 가장 입지가 불안한 사령탑은 가르시아 감독이다. 가르시아 감독은 부임 첫 해였던 2013-14시즌 승점 85점을 따내고도 아쉽게 2위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 시즌에는 갈짓자 행보 끝에 간신히 승점 70점으로 1점차(라치오 69점) 2위에 올랐다. 이에 구단 수뇌부는 지난 여름 에딘 제코, 모하메드 살라,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등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가르시아 감독에게 힘을 실었다.
하지만 올시즌 세리에A가 역대급 순위다툼에 휩싸인 가운데, AS로마는 11월 이후 리그 6경기에서 1승3무2패에 그치며 5위로 내려앉았다. 같은 기간 인터밀란은 5승1패를 기록, AS로마와의 승점 차이를 6점까지 벌리며 리그 1위를 되찾았다. 피오렌티나와 나폴리가 각각 3승2무1패로 2-3위를 지킨 가운데, 파죽지세 6연승의 유벤투스는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가까스로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르긴 했지만, 1승3무2패(승점 6점)의 쑥스러운 진출인 데다 16강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다. 게다가 코파 이탈리아 16강 스페치아(2부리그) 전에서 0-0 무승부 졸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배, 어이없이 탈락했다.
가르시아 감독으로선 경질의 칼날이 한발짝 앞까지 밀고 들어온 상태다. 그의 대체자로는 마르셀로 비엘사를 선두로 왈테르 마짜리, 마르셀로 리피, 루치아노 스팔레티 등이 거론되고 있다. 20일 세리에A 17라운드 제노아 전에 사실상 경질 여부가 달려있다.
2. '아직은 여유' 판 할 감독(맨유)
반면 판 할 감독은 상대적으로 지금 당장 사임 압력을 받고 있지는 않다. 차기 감독설 역시 아직은 본격적이지 않은 단계다. 맨유 레전드들과 팬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판 할 감독의 입지는 든든하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 캐피털원컵 탈락의 굴욕과는 별개로 어찌 됐든 리그 4위권을 지켜낸 덕분이다. 많은 부상선수 역시 변명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설마했던 무리뉴 감독의 경질이 이뤄진 이상, 판 할 감독으로선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다. 마침 21일 EPL 17라운드 상대는 강등권(18위)의 노리치시티다. 발목 부상으로 결장중이던 웨인 루니의 복귀도 유력한 만큼, 그간의 혹평을 일소할 만한 경기가 필요하다. 승패와 별개로 지난 PSV 같은 졸전을 펼칠 경우 여론이 더더욱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3. '전폭적 지지' 베니테스 감독(레알 마드리드)
현재 상황만 보면 판 할 감독보다 베니테스 감독이 더 위태로워보인다. 지난 15라운드 비야레알 전 패배로 승점 30점을 기록,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바르셀로나-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마드리드)와의 차이는 5점으로 벌어졌다. 자칫 4위 셀타비고(28점)-5위 비야레알(27점)에 따라잡힐 위기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비롯해 하메스 로드리게스, 토니 크로스 등 주축 선수들과의 잇따르는 불화설도 고민거리다. 마르카, 아스 등 현지 매체들의 불만도 폭발 직전이다. 베니테스 감독에겐 '천재지변'에 가까운 카림 벤제마의 협박 사건 연루 여부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하지만 팀내 입지는 오히려 판 할 감독보다 베니테스 감독 쪽이 더 탄탄해보인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연일 공개적인 지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페레스 회장은 17일(현지시간)에도 스페인 방송 카데나 세르에 출연해 "베니테스는 우리 팀의 해결사다. 무리뉴나 지네딘 지단이 그를 대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선수단과 감독의 불화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신뢰를 드러냈다.
다만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레이)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탈락한 이상, 최근 5경기 2승3패의 리그 부진이 더 길어질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15라운드까지 승점 30점이라는 기록은 최근 7년만의 최저 성적이다. 더구나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AS 로마에 패할 경우, 베니테스 감독의 자리가 위험해질 것은 당연지사다. 21일 강등권(18위)인 라요 바예카노 전에서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27년)이나 아르센 벵거 현 아스널 감독(20년)의 장기 집권이 존경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첼시에서 퍼거슨이나 벵거 못지 않은 입지로 보였던 무리뉴 감독조차 리그 우승 7개월 만에 끌어내려졌다. 가르시아와 판 할, 베니테스 감독은 나름 유럽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명장들이지만, 이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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