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는 알렉스 퍼거슨 다음으로 위대한 감독이다. 조제 무리뉴는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알란 파듀 크리스탈 팰리스 감독의 말이다. 우승 트로피 숫자만 놓고 본다면 파듀 감독의 말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무리뉴 감독은 단 5시즌만에 3번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벵거 감독은 19시즌 동안 거둔 우승과 같은 숫자다. 무리뉴 감독은 벵거 감독이 단 한번도 차지하지 못한 '빅이어(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두 번이나 거머쥐었다. 무리뉴 감독이 벵거 감독에게 "실패 전문가"라는 독설을 날리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 우승 경력만 놓고본다면 무리뉴는 위대한 감독이다.
하지만 명장은 단순히 우승 횟수로 정의할 수 없다. 퍼거슨을 비롯해 매트 버스비 전 맨유 감독, 빌 샹클리 전 리버풀 감독 등의 향수가 남아 있는 잉글랜드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클럽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리그를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헤게모니를 쥐었다는 점이다. 파듀 감독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무리뉴 감독은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우승컵을 수집한 '우승 청부사'지만 벵거 감독과 같이 19년간 한 팀을 이끌며 '왕조'를 구축하지 못했다. 무리뉴 감독은 끝내 여기에 발목을 잡혔다.
첼시가 결국 칼을 빼들었다. 첼시는 18일(한국시각)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주제 무리뉴 감독과 상호 합의 아래 갈라서기로 했다'고 전했다. 상호해지의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경질이다. 무리뉴 감독 은 2013년 6월 첼시 사령탑을 맡은 이후 2년6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첼시는 '그의 헌신을 감사히 생각한다'고 전했다. 원인은 역시 성적부진이다. 지난 시즌 디펜딩 챔피언 첼시는 올 시즌 강등권과 승점 1점 앞서 있는 17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최악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무리뉴 감독은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최근 다시 2연패에 빠지며 다시 위기설에 불을 지폈다. 선수들과의 관계도 악화일로를 겪자 결국 첼시는 무리뉴 경질 카드를 꺼냈다.
무리뉴 감독은 또 다시 '3년차 징크스'에 무릎을 꿇었다. 무리뉴 감독은 집권하는 클럽마다 3번째 시즌 때 위기를 겪었다. 시작은 첼시 1기인 2006~2007시즌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의 갈등으로 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안드리 셉첸코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갈등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절친으로 알려진 아브람 그란트가 팀내 기술이사로 임명되며 고조됐다. 첼시는 결국 리그 우승을 놓쳤고 무리뉴 감독은 이듬해 첼시를 떠났다. 두번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2012~2013시즌이었다. 시즌 전 무리뉴 감독은 운영진의 절대 신뢰 속에 4년 재계약을 맺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케르 카시야스 등 주축 선수들간의 갈등 속에 체면을 구겼다. 결국 무리뉴 감독은 우승을 놓친 채 쓸쓸히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야 했다. 2013~2014시즌 첼시로 다시 돌아온 무리뉴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4년 재계약을 맺으며 장기 집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무리뉴 감독은 쓸쓸히 첼시를 떠났다.
그렇다면 이 같은 3년차 징크스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토록 원했던 퍼거슨 감독의 길을 걷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리뉴 감독은 우승 트로피를 위해 전력 질주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 따라 움직이기 보다는 성공을 위한 가장 빠른 루트를 선택한다. 이를 통해 수많은 성공을 거뒀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무리뉴 감독의 성공 방정식은 첫 해 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다음 해 선수 영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무리뉴 감독은 맡는 클럽마다 2년차 시즌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지난 시즌 첼시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디에고 코스타의 영입을 통해 중원의 창의성과 최전방의 득점력 부족을 완벽히 해소하며 최고의 팀이 됐다. 역으로 말하면 이 선수들이 부진할 경우 같은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무리뉴 감독은 로테이션 보다는 베스트11을 중용하는 스타일이다. 에덴 아자르는 지난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혹사로 인해 올 시즌 최악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무리뉴 감독도 물론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최전방과 측면을 오갈 수 있는 앙트완 그리즈만, 플레이메이커를 겸할 수 있는 폴 포그바, 다재다능한 센터백 존 스톤스의 영입을 원했다. 모두 올 시즌 첼시가 약점을 보이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첼시의 수뇌부는 라다멜 팔카오, 파피 질로보지, 바바 라흐만 등을 영입해주는데 그쳤다. 생각해보니 무리뉴 감독은 이전 3년차 시즌에도 선수 영입을 두고 수뇌부와 마찰을 벌여왔다. 선수 영입에서 손발이 묶인 무리뉴 감독이 꺼낼 카드는 많지 않았다. 유스 출신들은 경험이 부족했고, 다른 선수들은 이미 임대를 떠난 상황이었다. 고비마다 유스 출신 혹은 자기가 가장 믿는 선수들을 앞세워 팀내 경쟁력을 높인 퍼거슨 감독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결국 왕조로 이어지기 위한 철학의 부재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무리뉴 감독은 의외로 팀내 장악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무리뉴 감독은 외부 요소를 앞세워 동기부여를 높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무리뉴의 팀이 중요 경기에서 승률이 높은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의외로 팀을 응집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팀내 정치 싸움을 해소하는데는 취약한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레알 마드리드 시절 이케르 카시야스 문제다. 무리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실패한 것은 주전 경쟁에서 밀린 카시야스의 언론 플레이를 이기지 못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올 시즌에도 무리뉴 감독은 일부 선수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무리뉴 감독은 공개적으로 "선수들에 배신을 당했다"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내부적으로 무너진 첼시 선수단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않았다. 반면 퍼거슨 감독은 자신의 축구에 방해가 되는 선수들은 가차 없이 쳐냈다. 맨유는 퍼거슨 감독의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팀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정치 싸움의 승리를 위해 언론을 이용한다.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무리뉴 감독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무리뉴 감독은 언론플레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하지만 이것이 역효과를 맞을 때도 있다. 때로는 선을 넘어 질타를 받기도 한다. 무리뉴 감독은 초반 에바 카네이로 팀 닥터를 경질하며 팀 내 위상을 높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의 수뇌부는 무리뉴 감독의 직설적인 화법을 못마땅해 했다. 선수단, 수뇌부와 갈등을 겪는 감독은 당연히 단명할 수 밖에 없다. 무리뉴 감독이 '제2의 퍼거슨'이 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