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런 경기를 했던 것일까.
전주 KCC가 최근 몇 시즌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경기력을 뽐냈다. 16일 전주실내체육관. 상위 팀 안양 KGC인삼공사를 홈으로 불러 들여 85대60의 대승을 거뒀다. KCC는 1쿼터부터 10점 차 이상의 리드를 잡더니 종료 부저가 울릴 때까지 상대를 밀어붙였다. 나무랄 데 없는 움직임,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추승균 KCC 감독도 경기 후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하승진과 힐이 골밑에서 잘 버텼다. 앞선에서는 김태술, 신명호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편하게 경기를 했던 것 같다"며 "이게 바로 우리 팀의 강점으로 가져갈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힐을 디펜스에서 많이 이용했다. 상대의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하루 연습하고 이 정도였으니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웃었다. 공격도 합격점을 주기 충분했지만, 수비에서 승인을 찾은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잔뜩 포진한 KGC는 투지를 활용한 적극적인 수비, 가로채기를 통한 속공이 주를 이루는 팀이다. 골밑에서는 오세근과 찰스 로드가 몸싸움을 통해 득점을 쌓고, 때론 외곽에 공을 빼줘 완벽한 찬스를 만드는 구단이다. 그러나 이날은 옴짝달싹 못했다. 기본적으로 페인트존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날까지 3연패에 허덕인 KCC는 그 동안 보여주지 않은 수비력을 과시했다. 추 감독이 말한 '힐을 이용한', 그러면서도 '하승진의 효과를 극대화 한' 수비가 핵심이었다. 힐은 하승진과 골밑을 나눠 책임지며 두터운 성을 쌓았다. 상대의 슛 시도 자체를 봉쇄할만큼 완벽한 움직임이었다.
하승진만 있던 KCC는 앞선 경기까지 수비에서 답답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2m21의 하승진은 필연적으로 기동력이 떨어지는 선수. 상대가 스크린 플레이, 픽앤롤 게임을 할 때 외곽슛을 견제해야 하는지, 골밑을 책임져야 하는지, 애매한 움직임을 보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힐이 팀에 합류한 뒤로는 외곽에서 과감히 상대의 슛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없어도 림 주변에는 힐이 상대의 공격 루트를 차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승진은 손만 들고 있어도 상대의 슛 성공률을 뚝 떨어뜨릴 수 있는 높이를 가졌다. 풍기는 아우라만 가지고도 위압감을 줄 수 있다. 한데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다. 안드레 에밋, 리카르도 포웰 등 두 명의 외국인 선수는 리바운드에 강점을 갖고 있는 선수가 아니지 않는가. 수비에서 하승진이 주저한다는 건. 결국 잃을 것(리바운드)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이 없는 듯 하다. 성큼성큼 다가가 손만 뻗는 시늉만 해도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는 장점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는 KCC가 바라던 트레이드 효과다. 이제 고작 1경기를 이겼을 뿐이지만 KCC가 남은 시즌 가야할 길이 분명해졌다는, 생각보다 큰 소득을 얻었다.
전주=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