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점칠 수 없지만 한국 축구와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61)의 '2015년 동행'은 아름다웠다. 희망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지난해 9월 한국 축구의 수장에 오른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에서 두 번째 연말을 맞았다.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감독직 제의를 받았을때부터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웠다. 대회에서 결과가 좋았을 때는 더 큰 희열과 만족감이 생긴다." 슈틸리케 감독의 오늘이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이야기는 더 풍성해진다. 슈틸리케 감독이 8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적인 얘기 보따리도 풀어놓았다. 그동안 금기시 된 영역이었지만 더 이상 감출 것도, 말 못할 것도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과 한국의 거리였다. 한지붕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송년 기자간담회의 키워드는 '걱정말아요, 한국 축구'였다. 양복도 거추장스러웠다. 편안한 평상복 차림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인간 슈틸리케'가 세상에 나왔다.
▶소년 슈틸리케
독일 출신의 슈틸리케 감독은 1972년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1977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다. 독일의 살아있는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의 후계자로 지목된 그는 10년간 독일 대표로도 활약했다. 성공한 축구 선수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그 비밀의 열쇠를 공개했다. 그는 "가정사를 보면 축구 재능은 외가에서 물려받은 것 같다. 독일이 전쟁을 하면서 꿈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유명한 핸드볼 선수였다. 외할아버지는 축구 선수였다. 지역에서는 나름 유명했다. 아버지는 운동신경이나 재능보다는 축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함께 경기를 보러 다녔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단 축구가 전부가 아니었다.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축구 때문에 학업을 소홀히 하거나, 교회를 가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어머니가 엄격하셨다. 아버지가 많이 보호하시고 내 편에 서주셨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머리 속에는 그 때의 기억이 남아 있다.
축구 성장기도 입에 올렸다. 17세 이전까지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했단다. 그는 "부모님은 절대로 진로에 관여하지 않았다. 지도자를 찾아가면서 청탁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고 했다. 18세 때 청소년대표팀에서 선발되면서 진로가 결정됐다. "프로는 돈과 연관돼 있다. 어린 나이부터 돈을 쫓다보면 악순환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축구가 좋아서 공을 쫓아야지 돈을 쫓으면 안된다. 나는 그랬다."
▶슈틸리케의 가족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으로 가족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39년간 함께한 아내 도리스 슈틸리케(61)와의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크리스티안(36)과 다니엘라(29)다. 둘째인 아들 마이클도 있었지만 가슴에 묻었다. 2008년 병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가족은 축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내와의 연애담은 소박했다. "만 18세 때 묀헨글라드바흐에 입단했는데, 그 때 부모님이 학업을 꼭 마쳐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곳에서 학업과 훈련을 병행하다 학교에서 지금의 아내와 만났다. 당시 아내는 내가 축구를 하는지도 몰랐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기 1년 전인 22세 때 결혼했다. 아내는 39년 결혼 생활동안 항상 함께 있었다. 많은 지도자가 기러기 생활을 하지만 아내는 항상 내 곁을 지켰다." 진심 아닌 진심도 이야기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편으로는 축구인인 것이 다행이었다. 39년 가운데 절반은 합숙과 소집으로 집을 비웠다"며 웃었다.
막내인 딸은 의사 사위와 결혼했고, 아들은 '솔로'라고 했다. 그는 "딸은 결혼해 사위와 함께 일하고 있다. 사위는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돼 사돈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딸은 병원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반면 아들은 머리카락 길이가 엉덩이까지 온다. 자유분방하다. 아들과 딸의 성격을 비교하면 정반대다. 휴가를 간다면 딸은 일주일 전에 꼼꼼히 가방을 싼다. 이에 비해 아들은 떠나기 1시간 전에 짐을 챙긴다. 빼놓고 가는 것이 꼭 1~2개가 있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윈드서핑에 취미가 있었다. 지금은 윈드서핑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여기서 어떤 명성을 쌓는지 전혀 관심 밖"이라며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가장의 사랑이 느껴졌다.
▶슈틸리케 그리고 한국
스위스, 독일, 코트디부아르, 카타르 등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슈틸리케 감독은 사령탑으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한국 축구와 만나면서 만개하고 있다. 슈틸리케호의 2015년은 대단했다. 승률 80%(16승3무1패), 17경기 무실점,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국 209개국 가운데 최소 실점(0.20골) 등 찬란한 길을 걸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입국해 10월 1일부로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4개월을 돌이켜보면 딱 생각했던 기대만큼 성과를 거뒀다"며 "선수들이 언제나 의욕적으로 열심히 하려는 자세를 보였고, 훈련장 안팎에서도 좋은 태도를 갖추고 있어 너무 좋았다"고 만족해 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도 1년이 훌쩍 흘렀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제는 가리지 않고 잘먹고 있지만 처음에 와서 힘든 것은 음식이었다"고 했다. 이제는 한우의 열혈 팬이 됐다. 그는 서울의 아지트도 소개했다. 이태원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리적으로 가깝다. 서울에는 주차 문제가 복잡한데 이태원은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다. 좋은 식당과 좋은 음식이 있고. '바(BAR)'도 있어 술도 한 잔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맥주와 와인은 물론 '폭탄주'도 즐기는 '애주가'다.
슈틸리케 감독은 16일 사랑의 연탄 배달 등 연말 행사에 참가한 후 24일 제2의 고향이자 집이 있는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인간 슈틸리케'는 '이웃집 노신사'였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