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비닐 봉지로 급하게 만들었죠."
유희관(두산)이 또 한 번 화끈한 팬 서비스를 선보였다. 6일 고척돔에서 열린 2015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 양준혁 야구재단이 개최하는 이번 대회에 유희관은 '양신팀' 소속으로 출전했다. 단 포지션은 투수가 아닌 외야수. 2번 타자 중견수였다.
1회부터 몸 개그가 나왔다. 외야 수비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상대 타자 윤석민의 평범한 뜬 공을 놓쳤다. 공식 기록도 실책. 관중석에서 웃음이 쏟아졌다. 백미는 타석이었다. 이날을 위해 단단히 준비한 듯 여러 선수들을 흉내 냈다. 두산 팬뿐 아니라 다른 구단 팬들까지 함성을 지르며 그를 응원할 정도였다.
1회말 첫 타석에서는 사무라이 타격폼을 들고 나왔다. 이 타격 자세는 최근 SNS를 통해 화제가 된 일본 초등학생 야구 선수의 현란한 동작이다. 유희관은 배트 박스에서 마운드 쪽으로 방망이를 한번 길게 뻗더니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결과는 땅볼. 두 번째 타석에서는 절친 서건창(넥센)으로 빙의됐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상체를 세우며 방망이를 내는 200안타 타자의 자세. 그는 "식상하지만 오늘 마지막으로 하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 번째 타석도 아주 흥미로웠다. 수염을 붙이고 나와 대기 타석에서 한 손으로 방망이를 마구 흔드는 준비 동작을 했다. NC '괴물' 에릭 테임즈의 루틴. 그는 타석에서도 테임즈의 것을 그대로 재현했다. "원래는 그냥 폼만 따라하려고 했다. 하지만 뭔가 밋밋한 것 아닌가.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급하게 검은 비닐 봉지를 잘라서 수염을 만들었다. 팬들이 좋아하셨으면 다행이다." 유희관의 말이다.
사실 그는 요즘 정규시즌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시리즈가 끝났어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이날을 포함해 연탄 나르기, 야구 대제전, 중앙대병원 봉사 활동 등 자선 행사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유희관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도 비슷한 맥락"이라면서 "오늘 같은 행사는 모두 기부금이 전달된다고 들었다. 무조건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후 MVP에도 선정된 그는 그러면서 "마운드에 선 투수들이 모두 나보다 공이 빠르더라. 너무 잘 던진다"며 "앞으로도 몇몇 행사가 남았다. 그 뒤에 착실히 몸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고척돔=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