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사모펀드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오릭스PE)로의 매각이 무산돼 분위기가 뒤숭숭한 현대증권에 또 하나의 악재가 덮쳤다.
현대증권 전직 임직원들이 실적을 높이기 위해 5년간 9567차례, 59조원의 자전거래(自轉去來)를 하거나 사전 수익률을 약정하는 등 불법 영업을 해온 사실이 검찰에 적발된 것. 자전거래는 증권회사가 같은 주식에 대해서 동일한 가격과 수량으로 매매를 체결하는 것으로 대량 주식 거래 등에 이용된다. 거래량 급변동으로 인해 주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증권거래소에 사전 신고를 하지 않으면 불법이다.
특히 현대증권은 2011년 2월에도 금융감독원에 의해 자전거래가 적발돼 해당 직원이 징계를 받은 바 있어 불공정거래 '단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게다가 매각 과정에서 오릭스PE가 사장으로 내정했던 김기범 전 대우증권 사장을 도왔던 일부 임원들이 연말에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으로부터 '보복성' 인사를 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사내 민심마저 흉흉해지고 있다.
▶정부기금으로 '돌려막기' 들통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조사1부는 지난 1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로 현대증권 전 고객자산운용본부장 A씨 등 임직원 4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전 신탁부장 B씨 등 3명을 각각 벌금 7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새누리당 정부기금 방만운용점검 태스크포스(TF)와 김용남 의원(새누리당)의 수사 의뢰로 시작됐다.
검찰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작년 12월까지 우정사업본부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총 834회에 걸쳐 사전 수익률을 약정하고 이 수익률에 미달할 경우 영업이익을 스스로 할인하면서까지 이 약정수익률을 맞춰줬다. 금융투자업체가 투자자에게 수익률을 약정하는 행위는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또한 영업이익을 할인하는 것은 결국 다른 투자자들에게 손실로 돌아가게 된다.
현대증권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0월 기준 전체 연기금 채권형 랩·신탁 시장에서 8조9024억원(점유율 22%)을 유치해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아울러 이들은 2009년 2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단기에 고율의 수익을 내주는 조건으로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보험, 예금과 고용노동부 산재보험, 고용보험 자금 등 정부기금을 위탁받아 기업어음(CP)과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등을 매입해 운용했다. 이 과정에서 약정기간 후에도 어음을 시장에 매각하지 않고 현대증권이 운용하는 다른 계좌에 매각해 '돌려막기'식으로 환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원칙적으로 약정한 단기 랩, 신탁계약이 기간만료로 종료될 경우 이 계좌에 있는 장기 CP, ABCP 등은 시장에 매각해 그 대금으로 투자자에게 환급하거나 매각이 어려우면 계약대로 실물을 그대로 인도해야 한다.
결국 현대증권은 상품간 자전거래를 편법적으로 동원한 셈이다. 자전거래는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지사항이다. 이 기간 현대증권의 자전거래 횟수는 총 9567회, 총액은 약 5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금융가에서 이같은 거래가 관행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금융투자업계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각종 불법행위에 대해 엄중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대증권은 2011년 2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자전거래가 적발돼 해당 직원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증권 측은 "자본시장통합법 전에서 이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아직 재판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연말 '괘씸성' 인사 루머 확산
올 연말 증권업계에서 대규모 인원감축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3분기 증권사의 실적 부진이 결국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현대증권의 올 3분기 연결 순이익은 176억원으로, 2분기 840억원에 비해 거의 5분의 1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26%가 감소한 수치다. 현대증권이 증시 호황을 배경으로 올 1분기 867억원을 시작으로 2분기 연속 8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왔던 것에 비하면, 수익성이 급격하게 쪼그라든 모습이다. 대형 증권사 '빅6' 가운데 가장 큰 순익 감소율(79%)을 보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12월말로 예정된 현대증권의 정기인사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현대증권을 인수하려던 오릭스PE와 관련된 말이 업계에 떠돌고 있다.
올해 1월 오릭스PE는 김기범 전 대우증권 사장을 신임 현대증권 대표이사로 내정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김 전 사장은 인수절차 과정에서 일부 현대증권 임원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매각이 불발되면서 김 전 사장을 도왔던 해당 임원들에 대한 '괘씸성'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윤경은 현 사장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물론 현대증권 인사의 최종 결정권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갖고 있다. 그러나 계열사 사장의 의중이 최대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해당 임원들의 '생존'은 윤경은 사장의 '결심'에 달렸다는 얘기다.
설령 해당 임원들이 이번 인사를 무사히 넘어가더라도 향후 좌천 또는 해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 초 재선임된 윤 사장이 2018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오릭스PE는 지난 10월 현대그룹측에 현대증권 인수가 힘들다는 의견과 함께 인수계약 해지를 통보, 현대증권의 매각이 무산됐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