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춘천 호반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DB생명 2015~2016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우리은행과 삼성생명의 경기.
확실히 흥미로운 매치였다. 지난 11월 2일 우리은행은 삼성생명을 확실히 제압했다. 모든 면에서 우위를 보이며 63대51, 12점 차의 대승을 거뒀다. 전반전 32-18의 우위를 그대로 지킨 완벽한 승리.
이날 경기 전 삼성생명 임근배 감독은 "나 자신도 얼떨떨한 상태였고, 선수들도 당시에는 긴장을 많이 했다"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우리은행의 약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트릭렌이라고 생각한다. 그 약점을 파고드는 몇 가지 준비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임 감독의 발언은 곰곰이 씹어볼 필요가 있다. 스트릭렌은 우리은행의 에이스 역할을 한다. 우리은행의 유기적 조직력과 승부처에서 스트릭렌의 득점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제 1옵션 외국인 선수가 포워드형 용병이다. 우리은행은 양지희라는 걸출한 센터가 있지만, 외국인 센터가 있는 팀에 비해 농구의 근간인 골밑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트릭렌의 뛰어난 외곽 결정력은 우리은행에 보이지 않는 밸런스의 흔들림을 준다. 박혜진 임영희 양지희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우리은행은 스트릭렌에 의해 결국 공격력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생길 확률이 높다. 이런 밸런스의 흐트러짐, 그리고 거기에 따른 약점을 임 감독이 지적한 것이다.
이날 매치업이 흥미로웠던 부분은 두 가지였다. 과연 삼성생명이 우리은행 스트릭렌을 막기 위해 어떤 수비방법을 들고 나왔을 지, 그리고 우리은행은 삼성생명의 두 외국인 센터 해리스와 스톡스에 대한 수비를 어떻게 할 지 였다.
이 경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미스매치'였다. 여기에 대한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과 삼성생명 임근배 감독의 지략대결은 이날 대결의 '백미'였다.
우리은행의 스타팅 라인업은 의외였다. 외국인 제 2옵션 센터 샤샤 굿렛과 식스맨 김단비를 선발 명단에 포함했다. 대신, 스트릭렌과 양지희를 벤치에 앉혔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은행은 1일 신한은행과 혈투를 벌인 상태다. 때문에 무릎이 좋지 않은 스트릭렌과 양지희의 체력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 또 하나, 섣불리 베스트 5로 맞서다 실패하면, 먼저 패를 보여주는 결과를 경계한 용병술이기도 했다.
삼성생명의 1쿼터 공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고아라가 10득점을 몰아넣었는데, 그 과정이 매우 유기적이었다. 밖으로 나오는 패스를 주저없이 외곽포로 연결시켰다. 우리은행은 이은혜의 시간에 쫓겨 던진 3점포가 백보드를 맞고 림을 통과하는 등, 약간의 운이 뒤따랐다. 결국 19-18, 1점 차의 삼성생명 리드.
1쿼터 막판부터 우리은행은 베스트 5를 기용하며, 삼성생명을 거세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삼성생명은 갑자기 흔들렸다. 그러자 작전타임으로 우리은행의 흐름을 끊은 임근배 감독은 베테랑 가드 이미선을 기용했다. 상대에게 내준 흐름 자체를 막기 위한 기용이었다.
2쿼터부터 주전 라인업을 풀가동하기 시작한 우리은행은 위력적이었다. 폭넓은 활동폭과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수비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자연스럽게 공격의 리듬이 회복되면서 쉽게 역전을 시켰다.
삼성생명은 골밑의 미스매치를 살리기 위해 2대2 하이-로 공격을 시도했지만, 우리은행의 노련한 수비 움직임과 압박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때, 삼성생명은 24초 공격제한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미선이 2차례의 터프샷을 성공시키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이 슛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우리은행의 완벽한 흐름으로 돌아설 수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은행은 3쿼터 삼성생명이 하려고 했던 하이-로 게임을 보여줬다. 양지희가 치고 들어간 뒤 자유투 부근에 있던 굿렛에게 연결, 2득점을 만들었다. 박혜진과 임영희의 콤비 플레이로 이어졌다. 삼성생명은 스톡스를 기용하면서 골밑 1대1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격력이 떨어지는 스톡스는 자신있게 포스트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계속 외곽으로 패스를 연결했다. 삼성생명의 공격은 계속 무위로 끝났다.
우리은행은 3쿼터 중반, 특유의 풀코트 3-2 지역방어로 삼성생명을 압박했다. 8초 바이얼레인션을 유발한 우리은행은 곧바로 박혜진의 3점포가 터지면서 분위기를 완전히 휘잡아나갔다.
48-39, 9점 차의 리드였지만, 삼성생명이 갖는 심리적 타격은 엄청났다. 3분57초를 남기고 50-39, 11점 차로 벌어졌다. 우리은행이 2골 정도만 추가하면 사실상 경기가 끝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삼성생명의 추격이 시작됐다. 시발점은 베테랑 가드 이미선이었다. 이미선은 스틸에 성공, 고아라에게 연결시키며 속공 득점을 만들어냈다. 분위기가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유승희의 자유투 2개와 배혜윤의 미드 레인지 점프슛이 림을 통과했다. 50-45, 점수 차는 좁혀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미스매치 대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삼성생명은 스톡스를 해리스로 교체했다. 골밑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해리스의 연속 골밑슛이 터졌다. 그리고 2-3 지역방어로 수비를 변환시켰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했다. 삼성생명은 스트릭렌을 효과적으로 막을 카드가 부족했다. 단지 스트릭렌의 1대1 공격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우리은행은 스트릭렌의 미스매치를 중심으로, 적절한 패스게임을 하는 팀이다. 스트릭렌에게 미스매치가 날 경우, 그 부분을 공략하지만, 상대가 더블팀이 오거나, 스위치 디펜스를 시도할 경우 또 다른 미스매치를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양지희 박혜진 임영희의 미드 레인지 부근의 슛이나 돌파에 의한 효율적인 득점이 이뤄진다.
공격의 유기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대인방어를 쓸 경우, 매치업 자체를 구성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3쿼터 막판 2-3 지역방어를 사용했다. 존 디펜스를 쓰는 타이밍이 좋았다. 지역방어는 쓰면 쓸수록 상대가 적응한다. 우리은행처럼 노련한 팀이라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처음부터 지역방어를 쓰지 않고 3쿼터 막판까지 끌고 나왔다. 또 하나, 여자농구는 오픈 찬스에도 야투율 자체가 약간 더 떨어진다. 삼성생명의 2-3 지역방어는 골밑에 해리스를 배치한 골밑 중심의 존 디펜스였다. 즉, 우리은행이 지역방어를 깬 뒤 외곽에 오픈 찬스를 만들었다고 해도 3점슛을 성공해야 하는 숙제가 생긴다.
3쿼터 9.6초를 남기고 박혜진은 정확한 패싱 게임에 의한 3점포를 터뜨렸다. 정확한 시점에 상대에 타격을 입히는 중거리포를 가동했다.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가드 다웠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4쿼터에도 지역방어를 풀지 않았다.
효과가 있었다. 우리은행은 4쿼터 7분51초를 남기고 이승아가 3점포를 터뜨렸다. 하지만 4쿼터 5분30초가 지날 때까지 더 이상 점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자 삼성생명은 해리스와 배혜윤을 앞세워 더욱 강하게 우리은행의 골밑을 압박했다. 결국 경기종료 4분47초를 남기고, 삼성생명은 해리스의 골밑슛으로 60-58, 역전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우리은행은 더욱 집중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더욱 기민한 패싱게임으로 3점포가 아닌 미드 레인지 찬스를 적극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스트릭렌과 임영희의 득점은 림 3~5m 정도 떨어진 지점의 미드 레인지 오픈 찬스였다. 우리은행은 삼성생명의 포스트 업에 대비한 수비 변환을 시도했다. 해리스가 볼을 잡을 때 기습적인 더블팀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해리스의 패싱레인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결국 해리스는 62-62 동점 상황에서 더블팀을 당하자, 우리은행에 공격권을 넘겨주는 패스미스를 범하기도 했다.
삼성생명은 배혜윤의 골밑돌파로 다시 2점 차의 리드를 잡았다.
양팀이 미스매치에 대한 수비에 사력을 다하자 경기 막판 소강상태에 빠졌다. 경기종료 28.4초를 남기고 삼성생명은 공격 제한시간에 쫓겨 이미선이 3점슛을 던졌지만, 에어볼이 됐다.
우리은행의 마지막 공격. 임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렀다. 삼성생명은 팀 파울에 여유가 있었다.
임 감독이 지시한 부분은 두 가지였다. 우리은행의 첫 패스가 나갈 때 고아라에게 더블팀을 지시했다. 그리고 더블팀에서 우리은행의 공이 빠져나갈 경우, 파울을 지시했다. 연장전을 대비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고아라는 더블팀을 가지 못했다. 박혜진이 드리블을 치고 있을 때 수비수 박하나는 정상적인 1대1 수비를 했다.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아쉬웠던 부분이다. 하지만 '성장통'이기도 하다. 올 시즌 임 감독을 영입한 삼성생명은 고아라 박하나 등을 주축으로 새롭게 팀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경험과 세기의 부족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성생명의 수비는 성공하는 듯 했다. 박혜진의 슛을 박하나가 블록했다. 하지만 그 공은 골밑에 있던 스트릭렌에게 걸렸고, 그대로 림에 올렸다. 공격제한시간 단 1초만 남은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은행이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삼성생명의 '복수혈전'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미스매치'를 사이에 둔 양팀 사령탑의 기민한 대처는 인상적이었다. 가지고 있는 전력 한도 내에서 철저한 준비와 B 플랜으로 상대의 의도를 봉쇄하는 전술이 복합적으로 사용됐다.
우리은행은 확실히 강했다. 순간순간 대처 능력과 전술 변화에 따른 부작용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비시즌에 많은 준비를 했고, 주전들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의미였다. 비록, 몇 가지 실수가 있었지만, 삼성생명의 강인한 골밑공략과 수비 변화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11월 2일의 무기력한 경기력과는 180도 달랐다. 두 팀의 세번째 맞대결은 17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다. 춘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