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을 물리치고 프리미어12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한국은 장단 13개의 안타를 터뜨리며 7대0의 완승을 거두고 우여곡절 많았던 2주간의 일정을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결승전의 영웅은 박병호였다. 박병호는 4-0으로 앞선 4회초 좌월 130m짜리 초대형 3점홈런을 터뜨리며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지난 14일 멕시코와의 조별 리그서 밀어치기로 우중간 솔로홈런을 터뜨린데 이어 이번 대회 두 번째 홈런을 가장 필요할 때 쏘아올렸다. 그러나 사실 이번 대회 내내 박병호는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부각시키지 못했다. 8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타율 2할7리(29타수 6안타)에 그쳤고 홈런 2개로 4타점을 올린 게 전부였다. 김현수(13타점), 이대호(7타점)와 함께 대표팀의 클린업트리오를 맡았지만 고개를 숙인 타석이 더 많았다.
박병호가 만일 미네소타 트윈스 입단이 최종 결정되면 이번 대회는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출전한 마지막 공식 경기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박병호는 대회 기간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짜릿한 쐐기 홈런을 작렬하며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렸다.
박병호는 미국 대표팀의 불펜 에이스나 다름없은 브룩스 파운더스를 상대로 3회 첫 대결에서는 138㎞ 슬라이더에 방망이를 헛돌리며 삼진을 당했다. 그러나 4회 두 번째 만남에서는 볼카운트 2B에서 3구째 138㎞ 슬라이더가 높은 코스로 날아들자 정확한 스윙으로 배트 중심에 맞혀 비거리 130m에 이르는 대형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박병호의 장타 능력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홈런이었다.
이번 대회 이전 박병호가 미국 투수들을 상대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프로 입단 후 박병호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한 것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이 처음이었다. 미국 투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 대회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국내 리그서 메이저리그 또는 마이너리그 출신 투수들을 상대하기는 했지만, 국제대회에서는 전무한 상태였다.
따라서 이번 대회에 출전한 미국 투수들과의 상대에서 박병호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더블A와 트리플A 투수들이 주를 이뤘지만, 파운더스와 같은 수준의 투수를 메이저리그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파운더스는 이날 결승전에서 150㎞대 초반의 빠른 공과 두 가지 종류의 슬라이더, 커브 등의 변화구를 구사했다. 올해 25세인 파운더스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성장세를 보이며 더블A로 승격했다. 그런 파운더스를 상대로 홈런을 쳐냈다는 것은 내년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하나. 박병호는 이번 대회서 미국 투수들이 몸쪽 승부를 끈질기게 한다는 점도 확인했을 것이다. 1회초 미국 선발 잭 세고비아는 박병호를 상대로 초구부터 몸쪽으로 던지다 결국 4구째 유니폼을 살짝 스치는 사구를 허용했다. 3회초 파운더스는 2구와 3구를 박병호 머리쪽에 바짝 붙는 위협구로 던지며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병호는 지난 15일 조별 리그 미국전에서 대타로 나가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미국 투수들을 실질적으로 상대한 것은 이날 결승전이 처음이다. 두 차례 삼진과 두 차례 4사구, 그리고 홈런 한 방. 박병호에게는 미국으로 가기전 의미있는 경기를 치른 셈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