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나이츠는 2012~2013시즌부터 3시즌 연속 정규시즌 3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강팀이다. 올해도 역시 호성적이 기대됐다. 하지만 시즌 개막 직전 강력한 악재를 만났다.
팀의 주전 가드인 김선형이 대학 재학시절 불법 스포츠도박을 한 사실 때문에 KBL로부터 2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게다가 애런 헤인즈와 코트니 심스 주희정 박상오 등 팀의 주전들이 모두 팀을 떠났다.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팀에 위기가 엄습했다.
그 여파는 적지 않았다. 문경은 감독은 김민수와 박승리, 이동준-이승준 형제 등 이른바 '혼혈 4인방'에 데이비드 사이먼과 드워릭 스펜서를 활용해 위기를 뚫으려 했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8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오리온과 경기를 앞둔 시점에 7연패를 당하며 9위까지 추락해 있었다.
그러나 18일 홈경기에서 리그 1위팀 오리온을 무려 90대69로 대파하며 위기 탈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단순한 1승이 아니다. 연패 탈출과 더불어 SK가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리그의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뜻밖에도 신인 빅맨 이대헌(1m96)이 있었다.
이대헌은 신인드래프트 전체 7순위로 SK에 입단한 선수다. 동국대 재학시절 에이스였는데, 플레이 스타일이 모비스 함지훈과 비슷해 '보급형 함지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기술의 완성도나 스피드, 슛 정확도에서는 아무래도 '오리지널' 함지훈에 미치지 못했다. 드래프트 7순위로 뽑힌 것만 봐도 그에 대한 프로팀들의 기대치가 크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이대헌이 오리온전에서 보여준 움직임과 팀 기여도는 전혀 '드래프트 7순위'라고 볼 수 없었다. 스스로 빛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경기를 폭넓게 읽는 눈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패스와 수비 기여도로 팀 승리에 톡톡히 기여했다. 중요한 건 이런 이대헌의 활약상이 문경은 감독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다는 점이다.
이날 경기에서 기분좋은 승리를 거둔 뒤 문 감독은 팀내 최다득점을 올린 사이먼(22득점, 9리바운드)이나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리며 활약한 박승리(18득점 5어시스트)보다 이대헌에 대한 칭찬을 더 많이 했다. 문 감독은 "사실 이대헌이 이승준이나 이동준 김민수에 비해서는 높이나 운동 능력 등이 떨어진다. 하지만 공수에서 팀 플레이 이해도는 높다"면서 "특히 3쿼터 때 사이먼에게 골밑 패스를 하는 장면은 나도 보고서 좀 놀랐다. 그 장면으로 오늘 이대헌이 나에게 많은 어필을 했다"고 칭찬했다.
문 감독이 언급한 이대헌의 '패스'는 3쿼터 초반에 나왔다. 전반을 44-37로 약간 앞선 채 시작한 SK는 3쿼터 초반부터 3분간 10득점을 했다. 오리온에는 4점만 허용하며 점수차를 확 벌렸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이대헌이었다. 이대헌은 3쿼터 9분37초 때 3점슛 라인 바깥에서 골밑에 있던 사이먼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넣었다. 사이먼은 손쉽게 득점을 성공했다. 이어 이대헌은 다음 공격 기회에서도 상대 수비가 골밑으로 몰리는 것을 보고 스펜서에게 패스해 3점슛을 이끌어냈다. 그리고는 또 다음 공격에서는 스크린에 이은 속임 동작으로 공간을 만든 뒤 직접 득점에 성공했다. 연속 7득점이 이대헌으로 인해 만들어진 셈이다. 문 감독이 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인 선수의 활약은 완전히 믿을 순 없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상대에 따라, 또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루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러나 이대헌이 오리온전만큼 꾸준히 팀 기여도를 높여간다면 분명 성공적으로 루키시즌을 보내게 될 듯 하다. 물론 그런 일이 이어진다면 SK 역시 획기적인 반전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 이대헌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