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를 하나 풀어보자. 따뜻하면서 추운 계절은? 봄? 가을? 아니다. '인사철'이다.
연말 인사철이 다가온다. 또 누군가는 옷을 벗는다. 찬바람이 더 매섭게 느껴질 거다. 그 옷을 또 누군가가 입는다.
얼마 전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가 대기업 이사 임기를 조사했다.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의 최고경영자급을 대상으로 했다. 이에 따르면 최대 100명이 내년 6월 이전에 임기가 끝난다. 많은 '별'들이 뜨고 지게 생겼다.
이들 중 특히 눈길이 가는 임원들이 있다.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과 윤부근 사장이다. 신 사장은 IM부문(IT모바일), 윤 사장은 CE부문(소비자가전) 수장이다. 내년 3월이 임기 만기다.
벌써부터 연임과 교체를 두고 말들이 많다. 삼성전자의 양대 축인 만큼 신임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냐는 전망도 있다.
두 최고경영자(CEO)는 소위 '공돌이의 신화'로 불린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쌓아올린 성과가 엄청나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삼성 인사 관전포인트
사실 인사는 재미있는 뉴스다. 남들에게는 말이다. 그것도 삼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
이번 연말 삼성그룹 임원인사, 몇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우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승진 여부다. 회장 취임설의 이유를 들어보자. 근거는 불확실성 제거다. '불씨'는 길어지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재다. 새로운 책임자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3분기 7조원대 영업이익 회복, 대규모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계획 등이 '배경'이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세대교체 바람은 거세진다.
반면 동양적 정서와 그룹의 전례에 비춰볼 때 아직 때가 아니란 분석도 있다. 이건희 회장도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 때 경영을 책임졌다. 하지만 회장 취임은 선대회장의 사후였다는 것이다.
다음 포인트가 신 사장과 윤 사장의 거취다. 신 사장은 지난해 연말에도 주목을 받았다.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5의 부진에 경질설이 나돌았다. 올해는 갤럭시S6의 흥행 성적이 문제다. 기대만큼 터지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결국 실적 개선 가능성을 얼마큼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윤 사장은 상황이 좀 나아 보인다. TV의 인지도 상승 등으로 점수를 많이 따놓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들과 함께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의 거취도 주목된다.
이밖에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사장)의 부회장 승진 여부와 역할도 관심을 끄는 포인트다.
▶'개발통' vs '히트상품 제조기'
신 사장은 '개발통'으로 불린다. 벤츠폰, 블루블랙폰, 울트라에디션 시리즈 개발 책임을 맡았다. 모두 1000만대 이상 팔린 작품들이다. 갤럭시S도 그의 손을 거쳤다.
내놓을 만한 '스펙'이 없다. 인하공전을 거쳐 광운대 전자공학과에 편입했다. 그게 끝이다. 그런 그가 CEO에 올랐다. 당연히 이유가 있다.
두 단어로 설명이 된다. '일벌레'와 '승부근성'이다. "독한 일벌레로 유명하다. 연구원 시절부터 맡은 일은 꼭 끝장을 봤다", "주말에 출근하면 신 사장 얼굴을 자주 보게 된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갤럭시 시리즈 개발 때는 3일 밤을 새우기도 했단다. 그런 열정으로 2000년 이사보에서 2006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남들은 보통 12년 걸리는 코스다.
2010년 1월 무선사업부장(사장)에 취임했다. 6개월 뒤 스마트폰 갤럭시S를 발표했다. 출시 70일만에 100만대가 팔렸다. 신기록이었다. 2011년에는 8조13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삼성전자 총영업이익(15조6442억원)의 52%이었다. 2012년에는 19조4200억원을 벌었다. 엄청난 성과였다. 그 해 조직개편으로 IM부문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입사 30년 만에 이뤄진 '공돌이의 신화'다. 스마트폰 세계점유율 1위, 그의 작품이다.
2011년이었다. 신 사장이 영어로 직접 갤럭시S2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소위 '된장 발음'이 나왔다. 한 외신 기자로부터 "삼성에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없냐"는 말을 들었다. 가만있을 수 있나. 차만 타면 영어 CD를 듣고 따라했다. 갤럭시S4 행사 뒤 외신들이 그의 영어실력을 평가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언어 장벽에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열정과 근성을 보여주는 일화다.
윤 사장은 1978년 삼성전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컬러TV 개발을 시작으로 유럽연구소·제조팀장·글로벌 운영팀장·개발팀장 등을 거쳤다. 2007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장, 2009년에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2년에는 CE부문 사장에 취임했다. 임원이 된 뒤 거의 2~3년 마다 승진했다. 초고속 승진 기록자다. 그만큼 성과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대표작이 '보르도 LCD TV'다. 2006년 이 TV를 세계 1위에 올려놓았다. 숙원 사업이었던 일본 소니를 꺾은 것이다. '히트상품 제조기'라는 명성이 따라붙었다. 2009년, 세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100만원 비싼 LED TV를 내놓았다. 두께를 29.9㎜로 줄인 강점을 부각시켰다. 역발상이었다. 결과? '대박'이었다.
전형적인 현장스타일이다. 수시로 현장 목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린다. 일단 판단이 서면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이중 사출 공법' 도입도 그렇게 이뤄졌다. 당초 투자비가 많다는 이유로 우려가 컸던 공법이다. 윤 사장은 현장을 믿고 밀어붙였다. 결국 이 공법을 통해 삼성TV 디자인은 업그레이드 됐다. 현재 삼성TV의 세계 1위를 이끄는 핵심 기술 중 하나다.
'신화'의 주역들이다. 과연 이어지는 연말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될까.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