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일본 대표팀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 그는 어떤 변수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분명, 개막전과 4강전에서 오타니의 투구내용은 달랐다. 하지만, 클래스는 확실히 높았다.
8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6이닝 2피안타 무실점, 10탈삼진을 기록했다. 여러가지 시선이 존재했다. '오타니의 공이 긁히는 날'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4강전에서도 그는 마치 넘을 수 없는 '철옹성'같았다.
패스트볼 구위는 여전했지만, 변화구의 제구력 자체는 개막전보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개막전과는 완전히 달랐던 볼 배합이었다. 단지 패턴만 달리한 게 아니었다. 경기 중간, 한국 타선이 전혀 예상치 못한 볼배합으로 허를 찔렀다. 그의 160㎞의 불같은 강속구는 무서웠다. 하지만, 그의 스터프가 더욱 무섭게 느껴진 이유는 '반전 볼배합'이었다.
▶결정구의 이동
개막전에서 오타니의 결정구는 포크볼이었다. 160㎞를 넘나드는 패스트볼과 느린 포크볼(130㎞ 후반)로 카운트를 잡고, 고속 포크볼로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는 패턴이었다.
당시 오타니의 공을 지켜본 한국 타자들은 "(고속) 포크볼이 순간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때문에 4강전을 앞두고 오타니의 공략법에 대해 대표팀 일부 타자들은 "느린 포크볼과 빠른 포크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오타니의 볼배합은 컨디션에 따라, 상황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김인식 대표팀 감독 역시 "오타니의 볼 배합은 달라질 수 있다. 경기 당일 상황에 따라 오타니의 대처법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확실히 그랬다. 예상대로 볼배합 자체를 통째로 바꿨다. 초반부터 힘으로 한국 타선을 눌렀다. 1회 2사 이후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김현수와 풀카운트 접전. 이때 오타니는 정면승부를 택했다. 159㎞ 패스트볼을 찔러넣으며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2회에 단 6개의 공을 던졌는데, 5개가 모두 패스트볼. 3회 황재균과 양의지를 연속 삼구 삼진처리한 마지막 공 역시 패스트볼(황재균 157㎞, 양의지 160㎞)이었다.
4회는 기어를 갈아넣는 과도기였다. 동시에 오타니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이닝이기도 했다. 정근우를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한 오타니는 이용규와 풀카운트 접전을 펼쳤다. 7구까지 가는 이용규의 끈기는 훌륭했다. 6구째 160㎞의 패스트볼을 커트하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하지만, 곧바로 오타니는 142㎞ 높은 포크볼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빠른 공에 잔뜩 대비하던 이용규 입장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높은 공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김현수를 만나서는 또 다시 패스트볼을 사용했다. 1B 2S에서 160㎞의 패스트볼로 또 다시 헛스윙 삼진.
▶슬라이더로 의표를 찌르다
어느 정도 변화는 예상됐었다. 보통 투수들은 4회 이후 볼 배합에 변화를 준다. 타자들에게 공이 눈에 익는 시점이다.
4회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내주지 않고 5탈삼진. 오타니 입장에서는 굳이 패턴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더욱 변화무쌍한 패턴 변화로 한국 타선을 '그로기 상태'로 만들었다.
5회 선두타자로 나선 이대호. 오타니에 익숙한 재팬시리즈 MVP. 포크볼 2개와 하나의 패스트볼로 만든 0B 2S. 4구째 의외의 공이 들어왔다. 패스트볼이나 포크볼이냐를 고민하는 이대호에게 137㎞ 슬라이더를 내놨다. 결국 헛스윙 삼진. 다음 타자 박병호에게는 1B 2S에서 160㎞ 패스트볼을 던졌다가 파울을 당하자, 곧바로 146㎞ 포크볼을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민병헌에게 던진 마지막 공은 138㎞ 슬라이더. 결국 5회 연속 세 타자 삼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슬라이더로 한국 타자들의 의표를 완벽히 찔렀다.
6회부터 미세하게 오타니의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패스트볼은 157㎞가 스피드건에 찍혔다. 하지만, 헛스윙을 하던 한국 타자들이 패스트볼을 커트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타니는 패스트볼과 포크볼, 그리고 슬라이더를 상황에 따라 섞어 던졌다. 7회 선두타자로 나선 정근우가 깨끗한 안타를 뽑아냈다. 149㎞ 가운데 몰린 패스트볼이었다.
위기를 느낀 오타니는 출력을 다시 최대치로 높혔다. 이용규에게 152, 155, 155㎞ 패스트볼을 3개 연속 던진 뒤 136㎞ 포크볼로 유도. 이후 158㎞ 바깥쪽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김현수에게 포크볼 3개, 패스트볼 2개을 던져 2B 2S를 만든 뒤 132㎞ 슬라이더가 높았다. 김현수가 큰 파울 타구를 날렸다. 그러자 이번에도 오타니는 157㎞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이대호에게는 초구 슬라이더와 2구 포크볼로 2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예상치 못한 141㎞ 포크볼로 2루수 앞 땅볼을 유도했다. 결국 오타니는 7이닝 1피안타 11탈삼진 무실점. 투구수는 85개.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완벽한 투구.
단지 160㎞의 패스트볼을 믿는 투구를 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란한 볼 배합은 타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물론 포수의 좋은 리드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패스트볼, 포크볼, 슬라이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능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던 오타니의 완벽 투구였다. 도쿄돔=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