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을 한 셈이야."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프리미어12 대회 개막 일본전을 치르는 김인식 감독은 선발 라인업 구상에 적지않은 심력을 소모했다. 특히 '3루수'가 김 감독을 고민에 깊이 빠지게 했다. 김 감독은 이날 일본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아무래도 3루수로 누굴 내보낼 지가 가장 신경쓰였다"고 털어놨다. 국제대회 경험면을 살펴보면 롯데 자이언츠 주전 3루수 황재균이 적격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이날 황재균이 아닌 성인대표팀이 처음인 허경민을 선발 3루수로 투입했다. 타순은 7번이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결국은 경기 감각 문제였다. 오타니가 빠른 공을 던지는데 황재균은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않아 실전에 나간 지가 너무 오래됐다. 그래서 빠른 공에 대처할 수 있을 지 걱정됐다. 또 스윙도 크게 치는 유형 아닌가. 일찍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팀 선수들의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황재균을 선발에서 제외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허경민의 선발 투입에 대해 "내 나름대로는 모험을 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한 것이 계속 걸리는 듯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허경민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는 "허경민이 한국시리즈에서도 잘했고, 쿠바전에서까지 좋은 모습을 보였다"며 이날 일본전에서도 활약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허경민은 팀의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찬데 이어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신기록(23개)을 달성하며 팀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난 4일 쿠바전 때는 교체 투입돼 9회 상대 타구를 잡아 1루에 정확히 터닝 송구하며 경기를 끝내는 호수비를 펼쳤고, 5일 경기에서는 2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당초 허경민은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대표팀 멤버였던 삼성 박석민이 한국시리즈 기간에 부상을 당해 지난 3일 급히 대표팀에 합류하게 됐다.
허경민 역시 개막전 선발 3루수라는 점에 큰 책임감과 동시에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허경민은 "오늘 보니 지난 한국시리즈는 마치 시범경기였던 것 같다"며 긴장감의 차원이 다르다고 밝혔다. 이어 "원래라면 지금 한창 마무리훈련을 할 때인데, 올해는 정말 오락같이 (차릿한) 한 해"라고 밝혔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친 허경민은 부담감을 털어내려는 듯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혼잣말을 했다. 왼쪽 가슴을 바라보며 "너 떨지마. 흥분하지 마"라며 중얼거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에게 말을 걸고 있던 것. 그리고 그 위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붙어있었다. 허경민의 3루수 선발 출전은 김인식 감독의 '모험'이 아니라 충분히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다.
삿포로돔(일본)=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