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축구선수가 중고, 대학교를 거쳐 K리그를 누비는 프로 축구선수가 될 확률은 0.8%다. 0.8%의 '바늘구멍' 경쟁을 뚫어내고 꿈을 이룬다고 해도 험난한 주전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부상의 위험도 상존한다. 프로 축구선수,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는 판검사 되기보다 어렵다.
이상하 체육인재육성재단 주무는 이 0.8%의 어마어마한 확률을 뚫어냈다. 2007년 수원대 시절 드래프트를 통해 'K리그 명문구단'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박현범, 조용태 등이 그의 입단 동기다. '청춘FC' 축구 미생들의 이야기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던 2015년, 말쑥한 수트 차림의 이상하(30)를 만났다. 축구 행정가를 꿈꾸는 '전직' 축구선수는 올해 직장인으로서 첫발을 떼었다.
▶프로 축구선수의 꿈을 접던 날
1985년생인 이상하 주무는 '차범근 축구교실' 1세대다.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이 귀국 후 독일의 유소년 시스템에 영감을 얻어 창시한 '공부하는 축구선수'들의 클럽에서 축구를 배웠다. 신용산초-용강중-여의도고-수원대를 거치며, 학창시절 내내 수업시간에 졸 지언정, 수업을 빼먹는 일은 없었다. 신생팀인 여의도고는 매년 8강에 들었고, 2003년 고3때는 서울특별시 교육감배 축구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주장 이상하는 우수선수상도 받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프로 무대는 시련이었다. 첫 시즌인 2008년 부상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허리 디스크로 5개월을 쉬었다. 2009시즌, K리그 컵 대회에 나섰다. 계약기간을 1년 남기고 브라질 임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좋은 활약을 펼치며 재계약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성사 단계에서 무산됐다. 때마침 수원 감독도 바뀌었다. 2011년 선택의 기로에서 이임생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싱가포르리그를 향했다. 축구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면서 다시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4경기만에 왼쪽 발목을 다치며 수술대에 올랐다. 부상이 또 발목을 잡았다. 어느새 군대를 가야할 나이가 됐다. K3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공을 찰까도 고민했다. 그러나 스물일곱살이 되던 2012년 7월, 그는 공익근무를 결정했다. 그렇게, 축구선수의 꿈을 접었다.
▶독한 공부를 결심하다
평생 축구선수의 삶 하나를 바라본 청춘이었다. 꿈을 접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아원에서 공익근무를 하며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쳤지만 "프로였대"라는 주변의 수군거림은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선수를 그만두고 세상에 나왔을 때 너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한때는 K리그 선수였는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는 생각도 했다. K리그도, A매치도 축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끊었다.
5개월의 방황 끝 축구를 내려놓고서야,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운동할 때처럼 밤낮없이 죽어라 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뭐든 할 수 있다.' 독한 다짐과 함께 2012년 11월 종로의 영어학원, 왕초보 문법반에 등록했다. 매일 저녁 7~10시까지 토플 기초반부터 중급반을 섭렵했다. 지하철을 오가며 단어를 외우고, 공익근무 짬짬이 예복습을 했다. 스승들의 조언에 따라 '토익점수 900점 이상'의 목표도 세웠다. 6시에 퇴근해 밤 11시까지 한달간 토익 독해, 리스닝 문제집을 풀고 또 풀었다. 첫 시험에서 830점을 받았다. 또다시 한달을 죽기살기로 덤볐다.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를 포기하고 공부를 하는데 이정도도 못할까. 인생을 걸었던 꿈, 내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것과 바꾼 것인데 대충하면 축구를 포기한 가치가 퇴색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악문 노력은 통했다. 목표했던 '945점'을 받아들었다.
2013년 5월 체육인재육성재단 외국어교율 국내연수 중급반 과정은 터닝포인트가 됐다. 7개월간 한국외국어대학에서 공부에 매달렸다. "다시 대학을 다니는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단 한번도 수업을 빼먹지 않았다.
'우등생' 이상하의 공부 열정은 통했다. 지난해 9월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지원하는 미국 테네시대 해외연수 대상자로 선발됐다. 테네시대에서의 6개월, 영어책을 읽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생각했다. "6개월 동안 미국생활이 너무 좋아서,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축구선수 특유의 체력과 사교성은 현지 생활에도 도움이 됐다. "하루종일 영어로 생활하다보니 영어가 정말 많이 늘었다. 축구이야기를 하고 함께 공을 차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했다."
올해 3월 이상하 주무는 체육인재육성재단에 국제업무 담당 직원으로 채용됐다. 김나미 체육인재육성재단 사무총장은 '폭풍 칭찬'을 쏟아냈다. "이 주무는 미국 NCAA 인턴십, 세계군인체육대회 연맹 인턴십 공모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었다. 우리 재단의 계약직 공모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붙었다. 일반 정규직보다 영어점수, 프레젠테이션 성적이 모두 월등하게 높았다. 준비된 체육 인재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축구인 출신 행정가로서 국제축구연맹(FIFA) 등에서 활약했으면 좋겠다."
▶선수 출신의 '프리미엄'은 없다
이 주무는 공부를 시작하는 축구 후배들을 향해 "선수출신이니 이 정도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절대로 안된다"고 조언했다. "박지성, 기성용이 아니라면 '선수 프리미엄'은 내려놓는 것이 좋다. 우리가 사회에 나와서 경쟁해야 하는 것은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일반학생들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쌓았을 때 운동 경력도 플러스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단에서 중급과정을 들으며, K리그의 경쟁상대는 야구가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내 경쟁자 역시 운동선수 출신이 아니라 일반체육, 국제행정, 영어, 중국어를 전공한 학생들이다. 그러니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더 준비해야 한다. 현장에서의 자산은 그 이후에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퇴했을 때 박지성, 기성용 등과 경쟁할 수는 없다. 출발점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준비해야 한다. 나만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 현장, 경험, 인맥 모두 나만의 것이 필요하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부와 운동 모두 어렵지만 공부는 그래도 보상이 있다. 운동할 때는 몸도 마음도 머리도 힘들다. 공부는 머리만 아프면 된다"며 웃었다.
축구선수 출신의 장점도 빼놓지 않았다. "선수로서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 배우려는 자세, 최선을 다하는 자세, 팀워크, 순발력, 승부욕은 일과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공부는 누구나 배울 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현장으로 몸으로 깨우친 현장경험은 남들이 쉽게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주무는 스포츠 행정가의 꿈에 첫발을 뗐다. "나는 여전히 도전중이다. 요즘 스페인어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스포츠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한국 축구와 국제축구계, 선배와 후배를 잇는 가교 역할도 하고 싶다." 축구가 준 아픈 시련도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축구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 '수원 가서 망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축구선수로 빛을 보지 못했어도 많은 걸 배웠다. 요즘은 맘 놓고 축구를 본다. 당연히 수원을 응원한다. 하하."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